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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현대곡… 통영의 밤 수놓은 '신비의 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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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현대곡… 통영의 밤 수놓은 '신비의 선율'

입력
2010.03.2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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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곡, 앙코르로 쳐 드릴까요?" 그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다. 현대곡의 세례 후, 5분여의 바로크 작품이 끝나니 오후 11시 14분이었지만 객석은 한동안 자리를 지켰다. '2010 통영국제음악제'의 꽃은 밤에 피었다.

19일 밤 9시 30분, 윤이상기념관 홀 앞에 '매진' 푯말이 내걸렸다. 용케 표를 구한 사람들은 쭉 늘어서서, 30분 뒤에 있을 피아니스트 남선영(29)의 무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12일부터 시작된 음악제는 낮 2시 기념관 앞에서 펼쳐진 도천테마공원 준공식으로 한껏 흥이 올랐다. 이날 밤, 소극장을 가득 메운 70여 관객은 그들의 기대가 옳았음을 확인했다.

앙코르곡과는 정반대의, 현대작품들이었다. 메시앙의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스무 개의 시선'에서는 극단적 고ㆍ저음으로 펼쳐지는 선율이 작곡자 특유의 신비주의를 부려놓고 있었다. 윤이상의 1982년작 '간주곡'에서는 피아노가 깨지지 않는 게 신통할 정도로 강하고도 빠른 타격음이 가해졌다. 잠시 퇴장 후, 민소매옷으로 갈아입고 들려준 슈톡하우젠의 '오페라'빛' 중 '목요일'주제에 의한 피아노 소품'에서는 현대성이 극으로 구현됐다. 피아노는 타악기였고, 몸 역시 치찰음, 신음 소리, 손뼉, 휘파람 등으로 타악음의 향연에 동참했다. 그는 11시가 훨씬 넘어서야 놓여났다.

그를 이튿날 만났다. 독일 현대음악의 선봉에 서 있는 프랑크푸르트의 '앙상블 모데른 아카데미'에 지난해 10월 장학생으로 들어가 단원 뺨칠 정도로 활약하고 있는 그에게서 '현대성'의 비밀이 풀려 나왔다. 서울대 음대, 하노버 음대, 칼스루에 음대를 거쳤다.

-이번 프로그램은 어떻게 짜여졌나

=나의 스승 슈톡하우젠이 메시앙의 제자다. 윤이상의 곡은 칼스루에 음대의 지도교수였던 한가연에게서 배웠는데, 도교를 소재로 한 곡이다. 그분들의 작품은 모두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아카데미의 작업은

=타악기와의 협연이나 믹싱 작업 등 학생으로는 접근하기 힘든 작업에 도움을 준다. 윤이상, 불레즈 등 대가들의 초연 의뢰가 줄 잇는 데다, 워크숍도 있다. 다달이 장학금을 받고 다닌다.

-슈톡하우젠은 어떤 사람인가

=자신에게 특히 관심있는 어린 동양 여학생이 배우러 왔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악보와 CD 제공은 물론 레슨이나 음향감독까지 해 준, 자상한 할아버지다. 방학 때 부산에 와 있으면 집으로 편지를 보내주기도 했다. "너를 통해서 잘 들을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이 기억에 특히 남는다.

-그의 교수법이라면.

=소리에 대한 감성을 일깨워주었다. 이번 곡에서 냈던 새소리는 선생님이"잘 들으라"고 특히 강조해, 새를 유심히 관찰하기도 했다. 한국서 레슨 받을 때는 틀리지 말고, 빨리, 크게 치라는 말만 들었다.

-한국의 음악적 유산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한국에서는 서양음악만 배웠다. 한국의 선율을 발견한 계기는 2004년 독일의 현대음악제였다. 의외였고, 아쉬웠다. 이후 귀국할 때마다 범패와 예불을 듣고, 전통무용을 배웠다. 그래서 익힌 국악적 발성법을 들려주니, 슈톡하우젠은"매우 훌륭한 소리"라 했고 한가연 선생은 "너, 많이 씹어 먹었구나"라며 놀라더라. 그게 바로 나 자신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앞으로 '현대음악과 국악' 같은 제목의 무대를 통해 나의 국악적 주법을 알릴 생각이다.

그는 "모차르트도 당시는 현대음악이었다"며 "모든 음악은 시대를 초월해 똑같다"고도 했다. 지난해 바덴바덴필하모닉과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20번'을 협연한 데는 그 같은 믿음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 박신혜(24ㆍ바이올린)가 들어와 '앙상블 모데른 아카데미'의 한국인은 현재 두 명이다.

■ 10년 맞아 오페라·무용 등 장르 확대'윤이상 기념 도천테마파크' 개관도

19일 시민들은 정오부터 삼삼오오 몰려와 나무로 만들어진 경사로 객석에서 남녘의 봄볕을 즐기며 개관 기념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문을 연 '윤이상 기념 도천테마파크'는 각각 무대시설을 갖춘 1, 2층의 기념관과 옥외 공간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실내에는 윤이상이 쓰던 첼로와 자필 악보 등 관련 자료 400여점을 주제에 따라 수시로 교체 전시한다.

10회째를 맞은 이 음악제는 올해부터 오페라와 무용 등 인접 장르까지 포함해 거듭나기를 선언했다. 재단법인 통영국제음악제 김승근 이사는 "9년 동안 윤이상 작품 등 음악을 중심으로 해오던 데서 탈피, 여러 장르와의 결합을 모색키로 했다"며 "21세기 친화적 예술 형태에 대해 고민할 것"이라 밝혔다. 김 이사는 "서울에서 '난타'가 상설 공연되듯 통영국제음악제를 관광상품으로 키우는 방법도 모색도 고려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개관식에서는 북한에서 만들어 보낸 윤이상 흉상이 공개됐다. 평양의 윤이상음악연구소가 기증한 이 흉상은 무게 85㎏에 가로 54㎝, 세로 49㎝, 높이 83㎝ 크기로, 북한 만수대창작소가 제작한 것이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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