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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적나라한 사실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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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적나라한 사실 속으로

입력
2010.03.2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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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한국사회에서는 사실과 진실의 차이에 대한 말장난이 있었다. 말장난이라고 표현하기는 가슴 아픈, 독재시절의 유산이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언론에서 금지됐기 때문에 비유적으로 암시해야 하는 반면 정부에서 사실이라고 배포하는 자료들은 거짓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재에 반대하는 이들은 사실보다 진실을 추구하자는 다짐들을 나누곤 했다.

굳이 영어를 들어 비교하자면 사실(facts)은 확인된 개별사안을 말하는 것이고, 진실은 참이냐 거짓이냐의 관점에서 참(truth)인 내용을 말한다. 사실은, 있는 일을 나열한 것이고 진실은, 가치라는 관점이 들어간 것이니 단어가 따로 있겠지만 언론보도에서 진실은 사실이어야 한다.

공인의식 없는 저질발언들

한국 사회에서 이렇게 당연한 명제가 오랫동안 혼동이 되어왔던 것은 알면서도 봐주는, 다시 말해 제 편이라 여기면 허물을 보도하지 않는, 언론과 권력의 유착관계도 한몫을 했다. 김영삼 정부 때까지도 정치권력을 제 편이라 여기던 몇몇 언론사들은 김대중 정부 들어서면서 정치권력을 제 편이라고 여기지 않게 되었고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확실히 적으로 표적을 삼았다. 권력에 대한 견제라는 측면에서 이를 나무랄 수는 없다. 문제는 그러면서 정권 반대편 세력을 제 편으로 삼은 데 있었다.

드디어 그 반대편 세력인 한나라당이 집권하자 과거 10년간 권력에 대해 들이대던 날카로운 잣대는 허물어졌다. 당연히 보도해야 마땅한 사실들을 제 편에 불리하면 덮어두었다. 주요 언론의 이런 봐주기는 부정 부패한 관리들을 기용하고 문화까지 정부가 통제하고 국민의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정부가 4대강 개발을 적극 추진하는 힘이 됐다. 권력자들은 이제 제 편을 믿고 마음껏 떠들면서 제 수준을 한껏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수준은 참으로 경악할만한 싸구려 정신이다.

방송사 최대주주 이사회 이사장이 사장을 '큰 집으로 불러서' '조인트를 까'면서 '좌파대청소'를 주문했다는 말은, 내용도 천박스럽지만 그런 내용을 서슴없이 말할 수 있는 배경이 더 놀랍다. 아마도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은 이 말을 하면서 그 내용이 알려지면 그가 '한 건'한 것을 대통령이 확실히 알아주리라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발언이 문제가 되자 대통령이 홍보수석에게 신동아 보도를 막지 못한 것을 질책했다는 것만 봐도 그들의 세계에서는 김 이사장의 행위가 문제가 아니라 언론을 제 편으로 삼아 흉한 내용은 보도되지 않게 '마사지'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는 걸 알 수 있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조계종 총무원장에게 봉은사 명진스님을 두고 '부자 동네 절에 좌파 주지가 있어서 되겠느냐'고 했다는 말이나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저출산대책을 논의하는 여기자포럼에 나타나 '여성의 본분은 집에서 살림하며 아이 바르게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 하는 현모양처'라고 권유한 것, 국방장관이 '아프리카 밀림은 무식한 흑인들이 뛰어다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모두 그들이 사는 세계에서는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조계종이 딱 부러지게 아니라고 확인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안상수 대표가 그 발언이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면 더더욱 그런 발언이 특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입만 열면 좌파 어쩌고 하면서 이념을 들먹이지만, 이들의 발언은 이념을 논할 수준에 이르지도 못한, 공인 의식이 결여된 시정잡배 수준이다.

허물 감춰주는 권언야합 끝나

이들의 의식은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정당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않았고 그래서 언론도 그 시절처럼 잘 통제되는 것이 정상이라 여기는 모양이다. 다행스럽게도 현재는 21세기이고, 한국민은 피흘리는 투쟁 끝에 얻은 민주화를 그렇게 쉽게 놓치지 않는다. 그러니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지 못할 것이면 저급한 수준을 밖으로 드러내지나 말기 바란다. 하나같이 외신에 보도되어 국격을 떨어뜨릴 내용이라 정말 낯이 뜨겁다.

서화숙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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