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박재원의 자녀 교육보감] <9> 재미와 경쟁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박재원의 자녀 교육보감] <9> 재미와 경쟁

입력
2010.03.24 00:02
0 0

핀란드 학생들에게 공부는 재미다.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즐거운 기분을 느낀다. 반면에 한국의 학생들은 정반대로 치닫고 있다. 재미를 느끼기는커녕 경쟁의 수단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자연히 공부가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공부에 대한 학부모의 태도도 자녀들의 학습 재미를 반감시킨다. 재미를 느끼면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을 하면 현실을 모르는 한가로운 소리로 치부한다. 치열한 성적 경쟁을 하는 마당에 재미를 거론하는 것 자체를 어이없어 한다. 하지만 재미라는 정서적인 만족감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정서와 이성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만 정서의 힘이 압도적이다. 가장 강력한 공부의 엔진은 불굴의 의지나 각오, 다짐 따위가 아니라 얼마나 재미를 느끼느냐에 있는 것이다. 최근 우주탐사 못지않게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으로 부각되고 있는 두뇌과학의 연구 성과를 종합해 봐도 공부에서 재미라는 요소가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동기유발 요인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문제는 공부의 재미를 방해하는 요인들이 학교생활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업에서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주도하고 학생들은 구경할 수밖에 없는 '주입식 교육'을 우선 꼽을 수 있다. 학생의 관심이나 선택권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 교과과정에도 문제가 있다.

학생들은 교과과정에 수동적으로 적응할 것만이 요구될 뿐 자신의 관심에 맞춰 선택할 수 있는 폭은 극히 제한적이다. 개인의 능력이나 관심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획일적인 시험범위와 평가도 문제다.

학생들이 공부에서 재미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약하는 또 다른 장애물은 심리적 요인에 기인한다. 첫 번째는 바로 경쟁에 대한 압박이다. 이미 공부라는 일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수준의 학생들은 경쟁에 대한 압박도 크게 받지 않아서 재미를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이미 공부에 익숙해져서 공부로부터 큰 부담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재미를 자주 경험하게 되고 그것이 다시 공부에 매진할 수 있는 정서적인 유인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문제는 공부를 힘겨워 하는 학생들인데 공부가 서툴기 때문에 경쟁에 따르는 부담을 많이 느끼고, 공부에서 재미를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도 더불어 크게 떨어진다.

또 다른 심리적 요인은 오직 인내와 끈기로 하는 전통적인 공부를 공부 자체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이다. 기성세대들은 자녀에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요구하지만, 어떤 일을 열심히 하게 만들려면 반드시 그 일 자체로부터 얻는 만족감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일단 하기 싫은 느낌이 드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학창시절 공부와 재미를 쉽게 연결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정반대로 공부는 지겹고 하기 싫은 것이라는 인상을 여전히 강하게 가지고 있다. 상당수 학부모들이 자신이 겪은 공부에 대한 나쁜 인상을 자기 자식에게 또 다시 강요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공부 재미의 효과는 공부를 멀리 하다가 열심히 하게 된 학생의 사례들을 분석해보면 분명해진다. 작심삼일로 끝나는 경우와 공부를 계속 열심히 하는 경우의 차이도 이것으로 설명된다. 후자에 해당하는 학생들의 경우 공부에 대해 이전과 다른 감정을 느낀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다른 감정이 곧 재미다. 재미라는 경험이 공부의 물꼬를 바꾸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비유컨대 평소 정말 싫어했던 메뉴였는데 어떻게 입을 댄 결과 자신의 평소 생각과는 달리 좋은 맛을 느끼게 되고 그 결과 그 메뉴를 즐기게 된 경우라고 보면 좋겠다.

결국 누가 공부를 하면서 재미라는 경험을 더 많이 하느냐가 공부 성과를 결정하는 핵심이다. 공부를 친구라고 가정해 보면 친구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즐거울수록 그 친구와의 관계가 가깝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수동적인 공부, 경쟁을 압박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공부의 한계는 너무도 분명하다. 시키지 않으면 하지 않고, 감시·감독이 소홀해지면 딴 짓을 하고, 시험 때가 아니면 온갖 꾀를 내어 회피하려는 공부는 백해무익할 뿐이다. 경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는 공부를 자녀가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다.

재미는 공부를 추동하는 가장 강력한 엔진이라고 했다. 엔진이 꺼진 상태에서 부모의 힘으로 밀고 가는 공부는, 경쟁에 대한 압력으로 밀고 가는 공부는 이미 승산이 없다. 경쟁에 대한 부담과 압박에서 벗어나 다양한 실험을 통해 공부에서 재미를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일이 시급하다.

비상교육공부연구소 소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