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이후 역대정부는 나름대로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수도권 집중을 막으려고 노력해 왔다. 이러한 노력은 노태우 정부에 들어와서 한층 강화되었다. 나는 건설부 장관으로 있으면서 수도권 규제는 강화하는 한편 지방발전을 위해 서해안 개발과 지방의 도로 항만 수자원 개발을 적극 추진했다는 것을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집중과 지방소외현상은 갈수록 깊어져 왔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정책을 정부가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로 실효가 없으니 수도권 규제를 아예 풀어버리자고 체념할 수는 없다.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찾아내야 한다.
지금도 수도권 규제를 더 풀자는 의견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기업들은 공장을 수도권에 짓기를 원한다. 그래야 땅값도 오르고 인력과 판로 접근성도 좋다. 수도권 규제가 풀리면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세수가 늘어 좋다.
수도권 주민들은 일자리 생기고 집값 올라서 좋다. 정부와 정치인들은 기업투자가 늘고 경기 살리는 효과가 있어서 좋다. 그런데 이 문제가 이렇게 근시적인 이해관계에서 다루어져야 할 문제인가. 이 문제는 이 나라 백년대계의 근간을 이루는 문제이며 따라서 백년 천년 앞을 내다보는 큰 눈으로 판단해야 할 일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수도권 집중률을 보면 1960년 20.8% 80년 35.5% 2005년 48.2%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1970년부터 2005년까지의 25년간을 보면 총인구가 1,600만 명 늘었는데 수도권에서 1,400만 명이 늘었다. 전국의 늘어나는 인구는 거의 모두 수도권으로 모여드는 것이다. 그래서 25년간 총인구의 지역별 비중 변화를 보면 수도권만 28%에서 48%로 늘고 영남권은 30%에서 27%로, 호남권은 21%에서 11%로, 충청권은 14%에서 10%로 그리고 강원과 제주는 7%에서 4%로 모두 감소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모여 사는 나라는 싱가포르 같은 도시국가를 빼놓고는 찾아 볼 수 없다. 인구의 수도권 집중률이 높다는 일본이나 멕시코 같은 나라도 25%를 넘지 않는다. 그러면 이처럼 지나친 수도권 집중현상이 과연 한국의 국가발전에 어떤 문제를 야기할까.
그동안 우리 삶의 질을 결정해온 것은 쌀 옷 자동차 냉장고 등 개개인이 돈만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사유재였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주택 교통 교육 환경 휴식공간 등 생활 공공재인 것이다. 그런데 국토의 균형발전 없이는 이러한 생활 공공재의 공급이 어렵다는 데 문제가 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보자. 주택문제는 수도권 집중 때문이다. 지방에는 주택부족 문제가 없다. 서울로 모여드는 인구 때문에 수도권의 집값 땅값이 오르고 집을 짓는데 엄청난 자원이 투입되고 있는 것이다. 교통문제도 수도권 집중 때문이다. 지방에는 교통난이 거의 없다. 교통난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얼마인가. 교육난도 수도권 집중 때문이다.
지방에는 학교가 텅텅 비어 있는데 수도권에는 학교가 모자라 막대한 국고를 들여 학교를 짓고 있다. 그리고는 자녀교육 때문에 서울로 계속 몰려들고 있으니 이 무슨 악순환인가. 환경문제 휴식공간 문제 등 모든 생활 공공재 문제가 같은 상황이다.
결국 수도권 집중으로 인해 수도권의 땅값 집값 교육비 물류비 등이 오르고 이러한 고비용으로 인해 저성장이 유발되는 것이다. 수도권 집중문제를 이해당사자들의 일시적 이해관계에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바로 여기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수도권 집중의 원인은 어디 있는가. 그 하나는 일자리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자녀교육 때문이다. 기업들이 모두 공장을 수도권에만 지으려 하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모여 든다. 그리고 지방에서는 좋은 대학을 보낼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 서울로 모여드는 것이다. 그래서 지방에서 다소 여유 있는 사람은 자녀가 중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면 모두 서울에 집을 마련하고 있지 않은가.
선진국에서는 도시에 일터가 있는 사람들이 지방에 살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반대로 지방에 직장이 있어도 서울에 집을 두는 현상이 보편화되어 있다. 이것은 정부 정책이 그렇게 하도록 만든 것이다. 수도권에 공장을 지어야 돈을 벌 수 있도록 그리고 서울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와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도록 정부정책이 그렇게 만든 것이니 그 원죄는 정부에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부가 풀어야 한다. 그 방법은 지방에 공장을 지어야 돈을 더 잘 벌 수 있도록 하고 지방에서 학교를 다녀도 대학을 가는데 불이익이 없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법인세 등 세금부담률을 지방에는 절반으로 내려주고 행정적 지원과 금융지원을 지방기업에 우대하는 방법이 있다.
교육면에서는 지방 학교에 대해서만 학비감면 혜택을 주는 방법, 중고등학교 입학은 전국을 단일 학군으로 하여 추첨선발토록 하는 방법, 대학입시에 있어 수능보다 내신 상대성적에 비중을 더 주고 지역균형 선발제도를 의무화하는 방법, 입학사정관제에 의한 선발을 넓히되 지방을 우대하도록 하는 방법 등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장경제 부문은 되도록 시장에 맡겨야 하지만 이러한 공공재 부문은 정부가 적극 개입하여 이 나라가 가는 방향을 제대로 잡아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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