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공관 현장검증에서도 검찰과 변호인은 자신의 논리로 사건을 재구성하고자 당시 오찬 참석자가 되어 상황을 재연하는 등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한명숙 전 총리 역시 그간 침묵을 지키던 모습과 달리 비교적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현장검증은 이날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오후 2시부터 시작해 3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검증 시작 15분 전에 도착한 한 전 총리는 "오랜만에 오니 감회가 새롭네요"라고 말한 뒤 변호인과 공관 앞 정원을 거닐고 나무를 어루만지는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 같은 여유도 잠시, 검증이 시작되자 긴장감이 감돌았다. 재판부가 공관 입구로 가 입구부터 주차장과 공관 사이 거리, 경호 차량의 위치 등을 확인한 뒤 공관 내부 검증이 시작되면서 검찰과 변호인의 신경전이 뜨거워졌다.
오찬이 진행되는 동안 한 전 총리의 수행과장인 강세희씨가 대기했다는 소파 위치를 놓고 공방이 벌어졌다. 지난해 공관이 리모델링되면서 소파 위치가 오찬장 문에서 이전보다 더 멀어졌다는 증인들의 진술도 이어졌다.
한 전 총리 역시 "이 부분이 달라졌다"고 변호인에게 이야기했다. 오찬이 끝나 오찬장 문이 열리는 '딸깍' 소리를 듣자마자 대기하던 강씨가 한 전 총리를 수행하기 위해 오찬장 입구로 간다는 진술에 따라 그 거리와 시간을 측정했다. 7m 거리에 4.5초로 기록되자 검찰은 "가방을 챙기는 시간을 감안하지 않았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이를 고려해 다시 측정하자 5초가 나왔다.
이 시간은 한 전 총리가 오찬이 끝난 뒤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이 의자에 놓고 나왔다는 돈을 챙겨 넣을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사실이어서 신경전이 이어졌다.
이어 문제의 오찬장 내부에서 곽씨가 의자에 돈을 두고 나간 상황을 재연했다. 검찰의 요청으로 총리공관 측은 오찬장 내부를 당시 그대로 복원해 둔 상태였다. 검사들이 각각 곽씨와 한 전 총리 역할을 하며 당시 상황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
한 전 총리 역할을 맡은 검사가 곽씨가 두고 나간 돈 봉투를 의자 뒤 서랍장에 넣은 뒤 잰 걸음으로 이미 오찬장을 빠져나간 다른 검사들(오찬 참석자 대역)을 따라잡자, 이를 지켜보던 한 전 총리는 "내 걸음이 저렇게 빠르지는 않은데…"라고 말했다. 그렇게 1시간 동안 검찰과 변호인은 당시 상황을 연출했고 이를 영상으로 기록했다.
검찰과 변호인이 반복해서 당시 상황을 재연하자 다소 지친 표정의 한 전 총리는 오찬장 창 밖으로 내리는 눈을 보며 "눈이 많이 내린다. 좋은 날이네요"라고 웃음을 짓기도 했다. 재판부 역시 "눈이 내립니다. 허허허"라고 웃으며 지나치게 치열한 양상을 보인 검찰과 변호인의 상황 재연을 자제시키기도 했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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