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관상대(觀象臺)'에 다닌다고 하면 '관상(觀相)' 보고 점 보는 사람이라고 여겼죠."
기상청 전 통보관인 김동완(64)씨는 맨 처음 국립중앙관상대(지금의 기상청)에서 들어가 일했던 1960년 1월을 생각하며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해 2월 구정 설을 맞아 처갓집에 방문했는데 대뜸 장모님께서 "왜 그런 일을 하냐"며 타박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당시에는 관상대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아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한 번은 역술가가 집으로 찾아와 "관상대에서 일한다고 해서 역술인 명부를 찾아봤는데 당신 이름은 등록이 안돼 있던데…"하며 고개를 저었을 정도였다니 오죽했을까.
국립중앙관상대에 들어가기 전 교육받았던 국립기상기술원 양성소에서 그는 1등으로 졸업했다. 그리고 '관상'이라는 말조차 생경했던 그 시절부터 1997년까지 근 40년을 기상 예보관으로 일했다. 한동안 TV와 라디오 등에 출연해 날씨를 전해주는 통보관으로 일을 했고 1982년부터는 아예 MBC로 직장을 옮겨 기상 캐스터로 활약했다.
김동완 전 통보관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의 독특한 날씨 예보법을 기억하곤 한다. 당시 김씨는 단순히 춥다, 덥다 등으로 날씨를 전달하던 것을 어떻게 우리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는지를 말해주려고 노력했다. 김씨는 "날씨가 추우면 멘트 말미에 10~15초 정도 옷을 꼭 껴 입어야 한다, 오늘은 감기에 걸릴 수 있다 등의 말을 넣었다"며 "지금은 '생활 기상'이라고 해서 모두 알지만, 그때만 해도 생소한 개념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김씨는 지금 날씨를 전하면서 자극적인 멘트를 사용하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요즘 조금만 더워도 찜통 더위, 가마솥 더위라는 말로 시청자들을 더 지치게 한다"며 "기상 통보관으로 일할 때 더우면 파리가 조는 듯한 더위, 추우면 호랑이 장가가는 날 등으로 표현했었다"고 말했다. 더우면 파리가 기승을 부리는데 그 파리조차도 더워서 조는 날씨, 호랑이가 장가가면 온 동물들이 긴장하는데 우리도 그렇게 긴장할 만큼 추운 날씨라는 의미라고 한다. 김씨는 "예보를 할 때는 될 수 있으면 시청자들을 편안하게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상의 날(3월 23일)을 맞아 기상청은 이런 김씨의 잘 알려져 있거나 덜 알려진 노고, 또 날씨 정보를 쉽고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함으로써 기상과학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하기로 했다고 22일 밝혔다.
김씨는 "1997년 현직에서 은퇴한 이후로 학교나 기업체 등에서 강의하며 날씨의 중요성을 알려왔다"며 "아직도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걸어온 길을 인정해줘서 감사할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김현우 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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