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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급변사태'는 천천히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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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급변사태'는 천천히 온다

입력
2010.03.23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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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급변사태'가능성이 다시 논란되고 있다. 잊을 만 하면 되살아났다 어느덧 잠잠해지는 현상의 되풀이로 여기면 속 편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더러 유별난 구석이 있다는 느낌도 든다. 공연히 덩달아 떠들다가 민망할 꼴이 되기 십상이지만, 미묘한 변화를 외면하다 어느 순간 좁은 안목을 한탄하게 되는 것이 세상 이치이기도 하다. 마냥 가볍게 넘길 것은 아니다.

과장된 경고와 고집스런 반박

최근의 급변사태 전망은 화폐개혁 실패와 경제위기 악화, 주민 불만 확산 등을 나름대로 객관적 근거로 제시한다. 여기에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김정일 위원장의 남은 수명을'3년쯤'으로 추정했다는 보도가 상상력을 부추겼다. 미국이 급변사태에 대비해 한미 연합훈련을 제의했다는 보도까지 떠올리면, 정말 뭐가 있지 않나 새삼 의구심이 든다.

일부 전문가는 한술 더 떠 '연내 미증유 사태'를 경고한다. 보수 언론은 숫제"초 읽기"라고 한껏 부풀린다. "급변 가능성이 적어도 20%를 넘어섰다"는 분석을 기준 삼더라도 성급하다. 북한이 곧 망할 것이란 주관적 기대는 금물이라는 충고는 늘 새겨 들을 만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급변사태는 없다고 장담하는 게 과연 옳을까.

북한은 1990년대 난무한 체제붕괴 전망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견고한 내구성을 보였다. 식량난 등 경제위기, 핵 문제 대치와 고립을 겪으면서도 지금껏 버틴 사실 자체가 내구성에 대한 의문을 감소시켰다. 어느 미국학자는 북한이'7단계 붕괴'의 4단계까지 갔다가 인도적 지원 등에 힘입어 다시 3단계로 안정된 상태라고 평가했다.

북한 체제의 내구력은 다양하게 설명된다. 식민지배와 전쟁 등 역사적 경험의 특수성, 미국ㆍ 남한과의 생존 대결, 강력한 사회 통제 등이다. 북한은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신화화해 체제의 정통성을 확보했고, 미국이 생존을 위협한다는 공포 전략을 이용해 주민 동원과 단결을 이루고 궁핍과 고난을 인내하도록 유도했다. 핵 문제를 둘러싼 미국의 정치경제적 봉쇄와 압박이 체제를 결속시키고 사회 통합을 유지하는 데 이바지한 측면도 있다.

심각한 경제난에도 대중시위 등의 체제전환 조짐이 없는 것을 북한 주민의 '정치적 효능감'부족 때문으로 보는 관점은 특히 주목할 만 하다. 자신들의 힘으로 체제를 바꿀 수 있다는 정치적 신념이 없고, 이는 오랜 전체주의적 억압과 더불어 반체제 세력을 결집할 정보통신수단이 없는 데서 비롯된다는 분석이다.

어쨌든 급변사태 전망은 과거 북한 붕괴론과 마찬가지로 체제 내구력을 과소평가한다는 비판이 많다. 북한은 당지도부가 모든 권력기관을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어 김 위원장 유고(有故) 때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체제를 유지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전문가들의 시각은 북한의 생존 능력에 익숙한 일반의 인식과도 언뜻 무리 없이 어울린다.

이런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더라도, 최근의 급변사태 전망은 흔한 북한 흔들기의 기미도 엿보인다. 6자 회담 등 북한과의 대치가 고비에 이르거나, 남북한 어느 쪽이 중요 정치행사를 앞둔 때면 으레 나타나는 현상이다. 또 반드시 북한을 흔들기보다 대북 정책 등과 얽힌 일반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일 수 있다.

역사의 법칙과 경험 되새겨야

그러나 이런저런 정치적 고려와 이해에 집착해 급변사태 가능성을 아주 부정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오만일 수 있다. 동구 사회주의 붕괴와 체제 전환의 거대한 변화를 정확히 내다본 전문가는 없었다. 그 역사적 경험을 되새긴다면, 북한의 미래는 실제 눈앞에 펼쳐지기 전에는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진지한 연구자들의 급변사태 경고는 귀 기울여야 한다.

급변사태(Sudden change)는 원래 천천히 닥친다. 이 용어가 유래한 듯한 카타스토로피(Catasrophe) 이론에 따르면, 아주 작은 변화가 쌓여 어느 순간 균형을 무너뜨리면 크고 갑작스러운 변화가 온다. 그게 자연과 역사의 법칙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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