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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전 국민 '얼음땡'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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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전 국민 '얼음땡'의 추억

입력
2010.03.23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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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교육청이 최근 부산의 초중고교에 공문을 보내 이번 학기부터 매일 학급 조회 시간에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라고 했다. 학생들이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 국가정체성을 확립하도록 하려는 것이란다.

반발이 많다. 맹세문을 외운다고 애국심이 길러지냐, 맹세를 강요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해치는 일이다, 군사독재 시절 파시즘의 잔재다, 시계를 거꾸로 돌리지 말라는 것이 비판의 요지다.

하긴 참 오래 전 일이다. 오후 5시였던가? 국기 하강식 음악이 흘러나오면 길을 걷다가도 다들 멈추고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충성을 다짐해야 했다. 머리가 굵어진 중고교 시절 의문이 생겼다. 왜 애국해야 하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작정 충성하라니,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전 국민의 억지 '얼음땡' 놀이가 우스워서 멈춰 선 사람들 사이로 일부러 보란듯이 걸어가기도 했다. 학교는 '붕어빵 생산 공장'이라고 여기던 터라 반감이 더 컸다.

당시 국기에 대한 맹세문은 이랬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이 문구는 2007년 이후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로 바뀌었다. 그러나, 다짐하라는 본질은 그대로다. 개인의 결단이어야 할 맹세를, 자발적 열정이어야 할 충성을 강요하는 것은 정신적 폭력이다.

나라 사랑하자는데 뭐가 문제냐며 부산시교육청을 옹호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그들은 요즘 아이들은 국가정체성이 약하다고, 그래서 국기와 애국가에 대한 예절도 엉망이라고 개탄한다. 문제는 강제성이다. 사람은, 아이들은 스스로 판단해서 행동하는 주체이지 무뇌아가 아니기 때문이다. 매일 되풀이해서 맹세하게 시키면 애국심이 생긴다? 그건 세뇌다. 부당할 뿐 아니라 효과도 미심쩍다. 세뇌의 힘을 믿는 사람이 있긴 하다. "세뇌당하신 거지."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의 한국예술종합학교 감사에 항의해 1인 시위를 하던 학부모에게 유인촌 장관이 그런 말을 한 것을 보면.

부산시교육청의 이번 공문 소식이 언론에 보도된 다음 날, 서울에서도 국가정체성 교육이 화제가 됐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대대표가 16일 바른교육국민연합이라는 단체의 창립대회에서 한 축사가 말썽을 일으킨 것이다. "지난 10년간 좌파정권의 편향된 교육 때문에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많은 세력이 생겨났고, 극악무도한 흉악 범죄들, 아동성폭력 범죄들 이런 것까지 생겨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비난이 빗발쳤다. 또 좌파 타령이냐며 지겨워하는 반응부터 성범죄와 흉악범에도 색깔론을 입히는 상상력이 놀랍다는 조롱까지 고루 나왔다.

이날 행사를 한 단체는 6월 2일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반 전교조 교육감 후보 단일화'를 표방하며 출범했다. "전교조는 좌파이고 전교조 교육감에게 우리 아이들을 맡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때맞춰 교육과학기술부는 전국의 전교조 소속 교사 명단을 파악 중이다. 공개하겠다고 한다.

학교는 이제 굳건해지겠다. 교사는 전교조 회원 여부에 따라, 아이들은 국기에 대한 맹세를 통해, 국가정체성을 제대로 갖췄는지 검증받고 훈련하게 됐으니. 대한민국, 참 튼튼해지겠다. 그런 대한민국이 과연 충성하고 싶은 좋은 나라일까.

오미환 문화부 차장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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