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하원이 21일(현지시간) 상원의 건강보험 개혁안을 천신만고 끝에 통과시킴으로써 ‘전국민의 의료보험화’를 목표로 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건보개혁이 사실상 완성됐다.
상하원이 합의한 수정안에 대한 상원의 표결 절차가 남아 있지만, 60석이 아닌 51석 과반수만으로 통과되는 ‘조정’ 방식으로 표결이 이뤄지기 때문에 민주당이 59석을 갖고 있는 상원 구도를 감안하면 통과는 거의 확정적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하원의 표결 처리에 정치적 생명을 걸다시피 총력전에 나선 것도 하원에서의 승부가 사실상 건보개혁의 성패를 결정짓는다는 것을 인식한 때문이다.
건보개혁안 통과로 오바마 대통령은 미 역사상 최대의 사회보장 입법을 완성한 대통령이라는 정치적 승리를 거머쥐었다. 미 언론들은 1965년 메디케어 도입 이후 45년만에 사회보장제도의 근간을 바꾸는 “혁명적 조치”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취임 이후 1년여 간 공화당과의 분열적 파당정치에 발목이 잡혀 한치도 진전을 보지 못했던 오바마 행정부의 각종 개혁 입법도 이번 개혁안 통과로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흔들렸던 정국 장악력도 다시 다잡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위험한 승부수
이번 건보개혁안은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극히 위험한 승부수였다. 올해 첫 해외순방을 두번씩이나 연기할 정도로 모든 정치생명을 걸고 추진한 것이어서 실패했을 경우 집권 2년 차에 ‘식물대통령’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언론들의 분석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퇴로 없는 승부를 펼친 것에 대해 “미국민과 정치를 스스로 건보개혁에 볼모로 넘긴 무책임한 도박”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이날 표결 과정을 포함한 지난 일주일은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긴박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하원은 이날 2시부터 토론 등 표결 일정을 시작했지만, 민주당은 이후 2시간이 넘도록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했다. 열쇠를 준 바트 스투팩 의원 등 반 낙태파 의원 7명이 백악관과 지도부의 끈질긴 구애에도 불구, 입장표명을 하지 않았다.
백악관이 전날 밤 늦게까지 이들 의원들과 접촉하면서 별도의 조치로 낙태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이들은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이날 오후가 돼서야 행정명령으로 연방기금을 낙태에 사용하지 않겠다는 백악관의 다짐에 합의하면서 민주당 지도부는 한숨을 돌렸다. 이날 찬성표(219표)가 과반수(216표)에서 불과 3표 차이여서 이들이 돌아서지 않았다면 건보개혁은 물론 국정 자체가 와해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일주일 간 무려 92명의 민주당 의원들을 직접 면담하거나 전화 통화로 찬성을 설득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의회 주변에서도 찬반시위가 격렬하게 벌어졌다. 건보개혁에 반대하는 수천명의 시위대가 방청석과 의사당 주변에서 “법안 폐기”를 주장하며 연 이틀 반대 집회를 열었고, 다른 한편에서 지지자들도 맞불집회를 갖는 등 공방전이 뜨겁게 펼쳐졌다.
건보정국 수습은 지금부터가 관건
오바마 대통령이 일단 정치적 승리를 거뒀지만 후유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건보개혁에 대한 찬반 여론이 팽팽하게 갈린 상황에서 반대파의 지지나 설득 없이 수적 우세를 동원해 강행처리한 때문이다.
소속의원 전원이 반대한 공화당은 이번주 상원에서의 수정안 표결을 “의회법이 규정한 모든 것”을 동원해 좌초시키고, 또 중간선거를 통해 민주당을 심판하는 쟁점으로 몰고가겠다는 입장이다. 공화당의 폴 라이언 하원의원은 이번 개혁안을 “프랑켄슈타인 법안”이라고 비난했고, 버지니아 폭스 의원은 “미 역사상 가장 공격적인 사회보장 조작 입법”이라고 격하게 반발했다. 공화당은 중간선거에서 다수당 지위를 빼앗으면 건보개혁을 철회하는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건보개혁 통과 이후에도 이를 둘러싼 혼란이 계속되고 여론의 지지가 호전되지 않는다면 건보개혁의 약발은 단명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따라서 건보개혁이 올해 중간선거와 더 나아가 2012년 재선 가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지금부터가 관건이라는 분석이다.
뉴욕타임스는 건보개혁 통과를 “오바마 대통령에게 정치적으로 위험한 승리”라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는 “1년 간의 논쟁은 오바마와 민주당에 상당한 정치적 손상을 안겼다”고 전했다.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aquariu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