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감추고 싶은 치부를 파헤친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나라도 침략할 수 있고, 그 침략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권모술수도 마다지 않는 미국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오래 전 이야기도 아니다. 현재진행형인 이라크전이 성역 없는 해부의 대상이다.
어느 나라 영화인지, 어떤 성향의 감독이 만들었는지 의구심이 일 만도 하다. 그러나 이 영화, 분명 미국산이다. 비판의 칼을 매섭게 벼리게 마련인 독립영화는 아니다. 제작비는 1억달러로 블록버스터의 요건을 갖췄다. 감독은 ‘본 슈프리머시’(2004)와 ‘본 얼티메이텀’(2007)을 연출한 폴 그린그래스. 영국 경찰의 1972년 북아일랜드인 학살 사건을 그린 ‘블러디 선데이’(2002)로 이름을 알리고, 9ㆍ11테러를 다룬 ‘플라이트 93’(2006)을 만든 정치색 강한 감독이라지만 최근의 행보는 주류 상업영화의 영역에 있었다.
커다란 의문부호가 서사의 뼈대를 맞춰 간다. 이라크의 대량살상 무기가 인류의 안녕을 위협한다며 이라크를 공격한 미국은 개전의 단초가 된 대량살상 무기 수색에 혈안이 돼 있다. 그 실무를 맡은 로이 밀러(맷 데이먼) 대위는 고급 정보를 바탕으로 곳곳을 뒤지지만 번번이 허탕만 칠 뿐이다. 먼지 쌓인 변기 공장을 급습해 머쓱해 하고, 소득 없이 부상만 입은 팀원을 망연히 바라봐야 한다. 상부에서 내려온 정보가 맞긴 맞나 의문을 품던 그는 대량살상 무기가 아예 없었는지 모른다는 의문을 품게 된다. 그는 비밀의 열쇠를 쥔 전 이라크 장성을 목숨을 걸고 추격한다. 그리고 그는 미군과 이라크인 등 1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의 방아쇠가 거대한 음모에 의해 당겨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미국의 어둠을 까발리는 정의로운 영화지만 상업영화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않는다. 미국의 음모는 서스펜스를 구축하는 주요 재료로 쓰이고, 밀러 대위의 정의에 찬 영웅담은 사실감 넘치는 액션으로 그려진다. 바그다드 거리를 광포하게 질주하는 배우들과 그들을 좇는 카메라는 관객들을 바로 전장으로 옮겨놓는다. 아찔한 액션의 쾌감으로 정신을 흔들어 놓는 그린그래스 감독의 흡입력은 변함없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장면에서 밀러는 사막의 도로를 한참 달린다. 오른쪽 먼발치에 대형 정유시설과 원유 저장고가 그의 눈에 들어온다. 카메라는 하늘로 서서히 올라가며 그 방대한 이라크의 석유시설을 내려다본다. 미국이 전쟁을 벌인 이유는 민주주의라는 정의를 이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석유라는 잿밥에 마음이 뺏겨서일 거라는 감독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린존’은 2003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된 뒤 미군이 대통령궁을 개조해 사령부 등을 설치한 곳. 군인과 미국 정부 관료들이 일광욕을 즐기는 고급 수영장과 호화 식당도 그 안에 있다. 수도와 전기가 끊겨 고통 받는 이라크 사람들에겐 별천지라 다름없는 곳. 이라크전의 아이러니한 현실을 대변하는 장소다. 2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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