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와 포장에 변화를 주고 신선한 이미지의 광고모델을 새로 기용해 본들 시장의 정체는 어쩔 수 없는 운명입니다."
저출산ㆍ고령화 추세에 먹을 거리를 깐깐하게 고르는 웰빙 트렌드까지 겹쳐 존속조차 위협 받고 있는 식품업계의 이야기다. 이대로라면 업계가 다 같이 손 놓고 폐업만 기다려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위기감마저 드는 요즘, 일찌감치 해외에서 미래의 성장 동력을 찾은 일부 업체들의 글로벌 경영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생산라인을 만드는 '그린필드' 투자로 내수 시장을 직접 공략하고, 다양한 루트로 수출길을 열면서 장수기업의 의지를 새롭게 다지는 식품업계의 해외 시장 개척 현황을 4회에 걸쳐 소개한다.
"하오리여우 파이(오리온 초코파이의 중국명) 사 주세요." "안돼, 집에 사다 놓은 큐티(오리온 사각 파이의 중국명)부터 다 먹고 사야지."
엄마의 손에 이끌려 진열대 앞을 떠났던 아이는 어느 새 수북이 쌓인 초코파이 판매대 앞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한눈을 파는 사이 스스로 제품을 꺼내 보려 손을 뻗어보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이다. 중국 베이징 시내 대형 슈퍼마켓 체인 징커롱(京客隆) 매장에서 발견한 이들 모자의 모습은 한국 기업 오리온의 중국 내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제과 매출로만 1조원을 넘긴 오리온은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웃돌면서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오리온의 작년 국내 매출액은 5,977억원, 해외부문 매출액은 5,460억원이다. 오리온은 현재 중국 4곳, 러시아 2곳, 베트남 2곳 등 총 8개의 글로벌 생산기지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국내에서 해외로 수출한 금액을 더하면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넘는다. 특히 이 중 중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70% 이상인 약 4,100억원이다. 중국에서 현지 생산을 시작한 1997년의 매출 30억원에서 140배 늘어난 수치다.
▦감성적으로 다가간 '좋은 친구' 파이
현지화를 위해 선택한 감성적인 접근이 주효했다. 오리온이 꼽는 중국 시장 개척의 첫 번째 성공 비결이다. 한ㆍ중 수교직후인 1993년 베이징 사무소를 개설하며 첫발을 내디딜 때부터 오리온 사명은 좋은 친구라는 의미의 '하오리여우'(好麗友)였다. '중국인의 DNA를 파악해 그들을 감동시킨다'는 특명 아래 초코파이의 상징이었던 파란색 포장은 붉은색으로 바꿨다. 중국인의 취향을 고려한 것이었다.
▦선택과 집중, 온리 오리온
1997년 베이징 인근 허베이(河北) 성 랑팡(廊坊)시에 초코파이 생산기지를 구축하면서 중국 공략을 본격화한 오리온은 현재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에 4개의 생산시설을 가동하고 있다.
초코파이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면서 오리온은 차츰 종합제과 업체의 장점을 살리기 시작했다. 브랜드의 영향력을 넓은 지역으로 확산시키는 데에는 일단 유통이 쉬운 껌이 도움이 됐다. 초코송이와 고래밥 등의 비스킷류가 그 다음이었고, 최근에는 포카칩 등 스낵류까지 선보였다. 시간차를 두고 파이-껌-비스킷-스낵으로 이어지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것을 오리온은 또 다른 중국 진출의 성공 비결로 꼽는다. "각 시기별로 맞는 제품이 따로 있기 때문에 중국 진출 초반부터 전 라인의 제품을 시장에 내놓지 않았다"는 게 김상윤 오리온 중국법인 마케팅총감의 설명이다. 이미 대부분의 글로벌 업체가 진출해 있는 중국 시장에서 세분화된 틈새를 잘 파악해 조금씩 파고 들면 언젠가 역전의 기회도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파이 후속 제품에도 감성 마케팅을 적용했음은 물론이다. 고래밥은 좋은 물고기가 많다는 의미의 '하오뚜어'(好多魚)라는 제품명으로 팔린다. 감자를 구워 만든 예감은' 소원을 이루다'(遂愿)라는 단어에 주재료인 감자(薯)를 넣어 '수웬'(薯願ㆍ감자의 꿈)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코리아 컴퍼니 No, 차이니즈 컴퍼니 Yes
중국 내 마케팅 전략을 묻는 질문에 김흥재 오리온 중국법인 대표가 강조한 한 마디는 "굳이 오리온이 한국 회사임을 내세우지 않는다"였다. "만국 공통의 기호가 반영되는 IT, 패션업종 등과 달리 진출해 있는 특정 국가의 소비자를 깊게 이해할 때 그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업종이 식품업인 만큼 중국인ㆍ문화를 함께 느끼는 '차이니즈 컴퍼니'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오리온 중국법인의 현지 감성 마케팅은 더욱 강화되는 추세다. 국내에서 오리온 초코파이가 '정'(情)을 키워드로 마케팅 캠페인을 벌였듯 2년 전부터 중국인의 사상을 대표하는 '인'(仁)을 초코파이의 마케팅 콘셉트로 내걸었다. 사회공헌활동으로도 눈을 돌리고 있다. 판다 모양으로 만든 '판다파이'(슝마오파이파이ㆍ 熊猫派派) 매출의 일부는 판다 보호기금으로 지원하고 있다.
김岾?대표는 "시장이 크고 인건비가 싸다는 식의 미시적인 판단 대신 우선 우리 기업의 핵심 경쟁력을 파악하는 게 중국 시장 개척의 전략적 접근방식"이라며 "올해 국내와 비슷한 수준인 5,500억원까지 매출을 끌어올린 후 3~4년 안에 중국에서만 매출 1조원을 돌파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김소연 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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