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정부종합청사 기획재정부 1층 기자실. 전 정부 부처 중 가장 많은 기자들이 북적대는 곳 중 하나다. 공식 등록기자만 180여명에 달한다. 중요한 발표라도 있는 날엔 아예 아수라장에 가깝다. 어떤 기자는 복사기가 고장 났다고, 또 어떤 기자는 보도자료가 제 때 나오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기자실장' 박미란(53ㆍ사진)씨는 때론 친동생처럼 다독이고 때론 버럭 고함을 질러가며 이런 기자실의 질서를 유지해간다. 1978년 당시 광화문에 있던 경제기획원에서 별정직 공무원으로 시작했으니 이런 생활이 올해로 33년째. 특히 이번에 일반직 5급 사무관으로 승진하는 감격을 맛봤다.
22살의 어린 나이에 기자실에 들어와 아버지뻘 되는 기자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일이 결코 녹록할 리 없었다. 옛 경제기획원과 재무부의 통합으로 기자들이 대폭 늘어나면서 이른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고생했던 일, 외환위기 당시 기자들과 함께 치열하게 부딪치던 일, 그리고 한여름 에어컨이 나오지 않아 더위와 벌레 등과 씨름했던 일 등을 차례로 떠올렸다.
서운함도 없지 않았다. 행정고시 출신들이 주류인 공무원 사회에서 기자실 별정직 여직원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기란 쉽지 않았다. 박 사무관은 "남들은 대부분 1년 정도 지나면 더 좋은 자리로 올라가지만 나만 늘 제자리에 멈춰있는 느낌이었다"며 "박미란이라는 사람이 공무원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그를 지탱시켜준 힘은 역시 '사람'이었다. 지금껏 그가 모신 장관만 32명, 공보관은 50명 전후에 달했고, 그를 거친 기자들은 족히 수천 명에 달한다. 이들 중 상당수가 지금껏 그를 잊지 않고 찾아준다. 이번에 사무관 승진 발령이 났을 때도 이들로부터의 축하난과 전화, 문자 등이 쇄도했다. 박 사무관은 "출입을 할 때는 아옹다옹 다투기도 했던 예전 기자들이 정말 본인 일처럼 진심으로 기뻐해줬다"고 했다.
그가 많이 아쉬워하는 것은 팍팍해진 언론 환경이다. 박 사무관은 "예전에는 기자들에게 여유와 낭만이 있었고 그래서 끈끈한 정도 생길 수 있었다"며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젊은 기자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좀 더 많이 이해해주고 보듬어줘야겠다"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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