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사는 나기철(57ㆍ사진) 시인이 네 번째 시집 '올레 끝'(서정시학 발행)을 냈다. 10행 이내의 간결한 시가 주종을 이루는 67편의 시가 올해로 등단 23년을 맞은 시인의 문학적 지향을 드러낸다. 나씨가 복효근 시인 등과 꾸리고 있는 시 동인 '작은시(詩)앗ㆍ채송화'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수다스러운 시'에 맞서 '짧고 야무진 시'를 추구한다.
나씨는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대상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본다. 가만가만하다. 애써 초월하려 하지 않는다. 중년의 국어교사로서 자기 일상, 평소 다니는 서점과 가게, 문득 마주친 사람, 제주의 오래된 풍경 같은 구체적이고 심상한 것들을 포장 없이 묘사할 뿐인데, 무심코 던지는 듯한 그 짧은 시구들이 마음에 꽉 들어찬다.
시'맹구처럼 안 생긴/ 형제 같은/ 말쑥하고 튼튼한 사내 셋/ 좁은 곳에서/ 십 년도 넘게/ 큰 호빵 만들지 않을 때/ 한번도 본 적 없는// 제주시 동문시장/ 옆 거리// 이 세상 같지 않은'('맹구분식')
인의 짧은 시가 이런 조화를 부리는 것은 낡고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그의 애틋한 마음 때문이다. 예컨대 쇠락하는 것들을 더 많이 눈에 담으려 일부러 멀리 돌아가는 아침 출근길 같은 것 말이다.
'아파트 일층 우리 집/ 뒷베란다에서는// 동백나무/ 오래고 붉은 양철지붕// 밤이면 켜지는/ 작은 창 하나// 오늘 아침/ 돌아가는 길// 올레 끝/ 동백나무 아래/ 오래된 의자/ 녹슨 드럼통/ 찌그러진 평상' ('올레 끝')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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