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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누구를 위한 TV중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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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누구를 위한 TV중계인가

입력
2010.03.2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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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인 두 개의 경험을 통해 시청자들은 상당량의 지혜를 축적했다. 국민들의 관심이 컸던 올림픽 경기를 지상파 방송 3사가 동시에 중계하면서 텔레비전은 같은 화면으로 ‘도배’되었다. “달리 볼 내용이 없다”는 시청자들의 아우성이 차고 넘쳤다. 그러다가 최근엔 한 상업방송사가 올림픽 경기를 독점 중계해 나머지 두 공영방송사는 관련된 내용의 방송을 아예 ‘증발’시켜 버렸다. 이번에는 보고 싶은 경기를 “달리 볼 방법이 없다”는 시청자들의 불만이 벌창하고 달구쳤다. 얼핏 음전하지 못한 극단의 반응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몽짜를 부린다거나 자발없다고 시청자들을 나무 날 일은 결코 아니다.

한정된 인력으로 다양한 경기를 중계하고 시청자들에게 심층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또 격조 높은 해설까지 곁들이라는 요구는 과도한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스포츠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이라도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제를 비중 있게 다뤄서 보도하는 균형감각은 방송의 사회적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징표이지만 그 역시 애면글면 무거운 어깨 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픽과 월드컵, 이른바 국민적 관심사가 큰 체육 행사의 경우 시청자들의 요구는 한결같다. ‘다양한 종목의 경기를 질 높은 방식으로 중계해 달라’는 것이다.

‘일반 국민’이라면 누구나 관심 있는 큰 경기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방송법 상의 ‘보편적 시청권’이다. 방송법은 국민들의 관심이 큰 경기를 방송 사업자들이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처리해 방송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에다가 보편적인 시청을 가능케 하기 위해 ‘보장위원회’를 설치했다. 또 방송 사업자들간의 마찰을 해소하기 위한 ‘분쟁조정 위원회’도 꾸려졌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시청권 보장에 해악을 미치는 행위의 시정을 명령할 수 있고 중계 방송권의 공동계약이나 과다 중복 편성을 막기 위한 순차편성을 권고할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지상파 방송 3사는 2006년 스포츠중계권 협상 시 ‘올림픽 월드컵 특별위원회’라는 단일창구를 만들어 대응하기로 ‘자율적인 신사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딱히 누구에게 위반자라는 낙인을 붙이기 민망할 정도로 방송 사업자들은 수시로 시청자들의 선택적 볼거리를 고려하기 전에 당장의 자기 입맛에 맞춰 중계권을 잽싸게 독차지해왔다. 스포츠 중계의 ‘도배’와 ‘증발’은 얄망궂은 시청자들 때문이 아니라 오롯이 사업에 눈먼 방송 사업자들의 이악스러움 탓이다. 오락가락 남세스러운 정부기관의 책임도 한 몫이다.

여러 방송 사업자들이 협력을 통해 스포츠 중계방송을 조율해 가는 일본과 독일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한 사업자가 중계권을 독점 행사하면서 더 많은 광고를 팔기 위해 생방송을 억제하고 경기가 끝난 후에 녹화 편집물을 잔뜩 방송하는 미국의 모델은 반드시 피해야 할 반면교사다. 본디 준수할 마음 없이 만든 자율적인 협약서는 허울에 불과하지만 그렇다고 법적인 강제를 통해 방송사업과 편성을 주무르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 동안 방송편성의 역사와 스포츠중계의 시청경험을 고려할 때 중계권 분쟁 해결에 정부기관이 즉시 칼을 뽑아 강제 개입하지 않고 자율적 해결을 권고한 것은 일견 바람직하다. 신사협정의 서명 문서가 없어서, 보편적 시청 보장을 위한 법적 규정이 미흡해서 중계권 분쟁이 난마처럼 꼬이고 얽힌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참에 스포츠 편성 뿐만 아니라 나아가 정치 사회적인 부문의 방송에 대해서 ‘감 놔라 배 놔라’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의혹을 떨쳐버리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길라잡이 없이 시청자들을 구름 밭 안개 속에 팽개쳐 버린 중계권 분쟁 속에서 그런 교훈이라도 하나 건져야 하지 않겠는가.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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