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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안동 장씨, 400년 명가를 만들다' 여성군자 장계향, 道를 요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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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안동 장씨, 400년 명가를 만들다' 여성군자 장계향, 道를 요리하다

입력
2010.03.2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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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 지음/푸른역사 발행ㆍ348쪽ㆍ1만5,000원

'정부인 안동 장씨'로 알려진 장계향(1598~1680)은 이문열씨의 소설 <선택> 의 실제 주인공이다. 재령 이씨인 이시명(1590~1674)과 혼인해 아들 여럿을 역사에 이름을 남긴 학자로 키웠으며, 셋째아들 이현일이 이조판서에 오르면서 정부인(貞夫人) 교지를 받았다. 시서화에 뛰어난 재능을 지녔지만 10대 시절에 쓴 시 몇 편과 맹호도 1점 정도만 전해질 뿐이며, 말년에는 여성이 쓴 동양 최초의 요리서 '음식디미방'을 한글로 남겼다. '디'는 '지(知)'의 옛말로, 제목을 풀이하면'음식의 맛을 아는 방법'이라는 뜻이다.

장계향은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전형적인 삶을 산 여인처럼 보인다. 그러나 안동 출신의 칼럼니스트 김서령씨는 <안동 장씨, 400년 명가를 만들다> 에서 '음식디미방'을 근거로 장계향을 "겉으로 고요했지만 안으로는 매우 적극적이고 치열한 삶을 살았으며, 평범으로 비범을 뛰어넘은 인물"로 해석한다. 여성의 능력이 발휘될 수 없었던 시대, 음식을 통해 도(道)를 말하고자 했던 '여성군자'였다는 것이다.

김씨는 '음식디미방'에서 녹두가루를 내는 방법이 까다롭고 정교하다 못해 고행에 가까운 것을 보고, 이 책이 단순한 레시피 북이 아니라 "여성이 도에 이르는 방법을 조목조목 기록해놓은 경전이자 성리학의 핵심을 은유한 철학서"임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런 시각과, 이현일이 어머니의 행적을 기록한 '정부인안동장씨실기'를 토대로 장계향의 일생을 소설 형식으로 써내려갔다. 안동 장씨가 이런 상황에서 이런 심정으로 이런 음식들을 만들게 되었으리라는 상상을 통해 그의 삶 사이사이 중요한 순간에 '음식디미방'에 나오는 음식 이야기와 철학을 집어넣었다. 음식으로 장계향의 삶을 재구성하면서 당대 안동의 문화와 언어도 생생하게 되살렸다.

책 속에서 병석에 누운 어머니를 대신해 부엌살림을 맡게 된 장계향은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는 아녀자의 도리 앞에 좌절하지만, 음식을 만드는 일이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자연이 준 생명을 인간의 생명으로 전환시키는 일임을 깨닫게 된다. 인조의 삼전도 굴욕 소식에 삶의 기력을 잃은 남편에게 연근 요리로 기운을 북돋우고, 어느 밭에서나 쉽게 자라지만 수라상에도 올라가는 동아 요리를 통해 아들에게 군자의 도를 일러준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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