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하게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프리카로 자전거 일주를 떠나겠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 대부분은 "미쳤냐"고 했다. 말리리아로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 아프리카 빈민촌 어린이들을 후원하기 위한 여행이라고 취지를 설명해도, 돌아오는 건 요즘처럼 취업이 어렵고 경기가 안 좋은 때에 무슨 철 없는 짓이냐는 '조언'이었다.
"저희도 좋은 직장 들어가서 열심히 다니는 게 삶의 정답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런 삶 속에서 눈빛은 점점 흐려지고, 열정은 식어만 갔죠.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나 자신에게 각인시키고, 이런 삶도 있다는 걸 주변에 널리 호소하고 싶었어요." 1년간 자전거로 아프리카를 종주하며 빈민촌 아이들에게 모기장 후원 사업('사마리아 프로젝트')을 펼칠 강병무(27), 이근용(29)씨의 얘기다.
독일계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데이터베이스 관리자(이씨)와 테스트 엔지니어(강씨)로 근무하며 착실하게 '삶의 스펙'을 쌓아온 두 젊은이는 상대의 마음 속에 심어진 남다른 꿈을 알아보고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이씨는 대학시절 해비타트 같은 봉사활동을 하며 나누는 삶에 대한 꿈을 키워왔고, 강씨는 인터넷을 통해 열성적으로 저소득층 가정 후원활동을 펼쳐오던 터였다. 여행을 좋아하는 두 사람이 자전거로 세계 일주 중인 여행가 문종성(29)씨의 사마리아 프로젝트 인터넷 공고를 보고 "서른이 되기 전 저질러보자"며 의기투합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자전거는 근육을 놀려 페달을 밟는 만큼만 앞으로 나가는 정직한 교통수단이잖아요. 자동차로는 놓칠 수밖에 없는 삶의 현장들을 구석구석 들여다보고 싶어요." 강씨는 "국내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왜 아프리카까지 가서 남을 돕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면서 "모기장만 있으면 충분히 살 수 있는 아이들이 연간 100만명씩 말라리아로 죽는 아프리카만큼 사정이 절박한 곳도 없지 않냐"고 되물었다.
세 명의 젊은이가 단출하게 시작하는 이 거창한 프로젝트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1년여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이씨와 강씨는 이미 아프리카에 도착해 있는 자전거 여행 전문가 문씨와 합류, 보츠와나 국경으로 가서 짐바브웨, 잠비아, 말라위, 모잠비크, 탄자니아, 케냐를 거쳐 우간다까지 아프리카를 거슬러 오른다.
모기장은 1주일에 한 끼는 금식하는 등 세 사람이 여행경비를 아껴 갹출한 돈과 지인들로부터 받은 후원금 등을 모아 마련할 예정이다. 현재 2개 마을에 모기장을 설치할 수 있는 300만원 정도의 예산을 확보해 뒀고, 향후 후원금이 모이는 대로 사업 대상지는 확대될 예정이다. 아프리카는 사정이 워낙 열악해 일부에게만 구호품을 배분했다가는 엄청난 내분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사마리아 프로젝트는 마을 전체에 모기장을 설치해주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잠은 텐트 치고 자고, 밥은 길에서 해먹을 계획이라 짐도 어마어마하다. 개인당 트렁크 6개. "삶의 무게"라 할 이 6개의 가방을 매달기 위해 자전거도 걸쇠와 선반을 달아 개조했다. 근육은 엄청나게 고생할 테지만, 여행이 가져다 줄 희열에 두렵지는 않다.
"이 여행이 끝나고 나면 제가 반짝반짝해져 있을 것 같아요. 물질과 욕망에 매몰되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저항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이씨는 여행을 마친 후 다시 회사에 취업해 전공인 IT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고 싶다고 했다. 신학회와 병원 등에서의 자원봉사 활동도 이미 계획돼 있다. 그 경험과 자산을 밑거름으로 50대부터는 진짜 '큰 삶'을 사는 게 이씨의 미래 비전.
반면 강씨는 "여행 후 회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복지재단 설립이라는 오랜 꿈을 본격적으로 실현"할 계획이다. "이번 여행이 세상을 더 크게 품을 수 있는 다짐과 각오를 만들어주리라고 기대해요. 남을 도우면서 비로소 느꼈던 너무나 큰 행복, 너무나 큰 의미, 너무나 큰 보람…. 돈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세상에 '당신이 삶이 정답이 아니다'라는 얘기를 꼭 해주고 싶어요."
두 젊은이는 17일 오후 요하네스버그로 떠났다. 지금쯤 한 마을에라도 더 모기장을 설치해주기 위해, 정직하게 온몸의 근육을 놀려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을 것이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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