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 현암사와 <법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 현암사와 <법전>

입력
2010.03.22 00:06
0 0

1950년대까지 법령집을 일컫는 말은 <육법전서(六法全書)> 였다. 그러나 육법전서는 프랑스 말을 일본이 그대로 들여와 사용하던 것이다.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법전(法典)> 이라는 말은 1959년 4월 현암사가 출간한 <법전> 이 가지를 뻗어 우리 사회에 정착시킨 것이다. 현암사는 국회가 제ㆍ개정한 법령 수백 건을 보완해 매년 초 수천 쪽의 개정판을 낸다. 법조문마다 제목을 달고 개정 연혁을 적고 판례 요지를 수록한다. <법전> 은 현암사의 오늘을 만든 토대이자, 현암사 설립자인 고(故) 조상원(1913~2000) 회장 평생의 역작이다.

■ 조 회장은 1945년 현암사의 전신 '건국공론사'창업 이래 55년간 스스로를 '책바치'라 부르며 출판 외곬 인생을 살았다. 그는 <육법전서> 가 왜색이 짙다며 3년여의 고투 끝에 <법전> 을 만들었다. <법전> 은 조 회장이 조선시대 <경국대전(經國大典)> <대전통편(大典通編)> 의 전통과 정체성을 계승한다는 의미로 창안한 단어다. 조 회장은 80년 장남 근태 씨에게 현암사 경영을 맡긴 뒤에도 쉬지 않고 법률 관련서 편집ㆍ교정 사업을 하는 등 법률 문화 확산에 매달렸다. 2000년 작고 직전까지도 <법전> 의 교정ㆍ교열을 봤을 정도다.

■ 72년부터 현암사 경영에 참여한 장남 조근태 회장도 아버지와 함께 <법전> 업그레이드에 헌신했다. 판형을 초판(120x150㎜)보다 2배 이상(210x300㎜)으로 키우고, 단어별ㆍ사례별 법조문 찾기 색인을 넣었다. 또 87년에는 일본식 낱말을 우리말로 바꾸기 위한 '순화용어편람'을 만들어 법전 부록으로 배포했다. 90년대 들어 법령 건수가 1,500건을 넘어서자 법률을 찾아보기 쉽도록 활자 크기를 대ㆍ중ㆍ소로 구분해 편집했다. 부자(父子)는 <법전> 이 정확하면서도 누구나 찾아 읽기 편해야 한다는 신념을 대를 이어 실천한 것이다.

■ 조근태 회장이 19일 별세했다. 현암사는 조 회장의 딸인 3세 경영인 조미현(40) 사장 체제로 운영된다. 현암사는 늘 출판을 통해 시대의 변화를 앞장서 보여주었다. 인터넷 시대의 도래에도 빠르고 열린 자세로 대처해 왔다. 수많은 양서를 출간하면서도 결코 이익만을 좇지 않았다. '백성은 법을 믿고 산다'는 말로 시작하는 <법전> 창간사처럼, 현암사는 책의 힘을 믿고 65년 풍상을 견뎌왔다. 출판의 위기를 말하는 시대, 현암사가 경륜의 힘으로 '이끼 가득 낀 바위'(玄岩ㆍ조상원 회장의 호) 위에 새로이 지성의 힘을 켜켜이 쌓아주기 바란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