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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 인터뷰] 美국무부 '용기있는 국제 여성상' 수상한 탈북여성 1호 박사 이애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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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 인터뷰] 美국무부 '용기있는 국제 여성상' 수상한 탈북여성 1호 박사 이애란 교수

입력
2010.03.2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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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여성 1호 박사. 이애란(46) 경인여대 식품영양조리과 교수에게 늘 꼬리표처럼 붙는 타이틀이다. 최근 또 다른 타이틀을 얻은 이 교수를 만나기 위해 19일 오전 그가 운영하는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을 찾았다. 출입문에 '통일은 밥상에서부터'라는 슬로건이 걸려 있는 것부터 남달랐다. 전날 미국에서 입국한 이 교수는 마침 가족과 연구원 직원 예닐곱과 함께 케이크와 흰떡을 놓고 조촐한 파티를 하고 있었다. 지난 10일 미 국무부로부터 받은 '용기 있는 국제 여성상'(Award for International Women of Courage) 수상 축하연이다. 이 교수는 어떤 사람이길래 미 국무부가 세계 100개국에서 추천을 받아 10명만을 선정해 수여한 상을 받게 된 것일까. 어린 시절 8년간의 정치범수용소 생활에서 4개월 된 아이를 들쳐 업고 결행한 탈북과 남한에서의 만학, 그리고 미 국무부 상을 받기까지 그의 도전정신과 열정, 무엇보다 탈북자와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남다른 생각과 꿈을 들어봤다.

_북한에서는 '철천지 원쑤'인 곳의 심장부 사람들을 두루 만났는데, 미국에서 무엇을 느꼈나요.

"수상식에서 미셸 오바마 대통령부인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만났지만 긴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어요. 나를 보더니 허깅(hugging)하고 '베리 뷰티풀(very beautiful)'을 연발하더군요. 어깨가 으쓱했습니다. 수상자 중에 제가 제일 눈에 띄었습니다. 한복입고 가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클린턴 국무장관은 여기서 북한의 인권상황을 언급하면서 탈북자 문제를 얘기했어요. 예전에 미국인들은 북한의 인권문제라 하면 강제수용소 얘기만 했는데 이번에 보니 탈북자 문제가 중요하다는 걸 그들도 느끼고 있더군요. 인권은 수용소 문제만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인식도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상당한 진전이죠."

_'용기 있는 국제 여성상' 수상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나는 황장엽 선생처럼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북한에서 출신성분이 나빠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소외된 사람이었죠. 그런데 대한민국에 와서 박사학위를 받고 이렇게 큰 상도 받았어요. 탈북자는 물론이고 북한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는다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의 메시지가 될 거라 생각해요. 탈북자의 한 마디는 남한 사람의 백 마디보다 북한사람에게 더 큰 힘을 지닙니다. 탈북자가 많이 생기는 게 김정일에게 어떤 것보다 아픈 것이죠. 여기 와서 정말, 시간이 흐를수록 북한사람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됩니다. 북한이 갑자기 망해 북쪽 사람들이 내려오면 우리가 힘들어진다고 말하는 남쪽 사람들이 있어요. 잔인합니다. 자유가 없다 해도 북한만한 나라가 없습니다."

_탈북자 문제는 어떤 측면에서 중요한가요.

"연 3,000명씩 들어오는 탈북자가 남한에서 정착하는 과정은 이 사회가 미래의 통일을 미리 경험하는 것입니다. 탈북자들이 이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차별 받고 소외될 때 (사회의 이질적인) 집단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건 암 덩어리죠. 언제 폭발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남쪽 사람들도 탈북자와 같이 일하면서 '(북한사람들의) 이런 측면은 좋고 이런 건 나쁘다'하는 노하우를 가져야 합니다. 남한사회에 탈북자의 안정적 정착은 미래통일을 위한 일입니다. 통일 준비인 셈이죠. 통일됐을 때 북한사람들도 행복하게 살아야 우리도 편안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 쪽에서 소요가 일어나면 우리도 불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_탈북자들이 제대로 정착을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지난해 탈북여성들을 대상으로 리서치를 했더니 98%가 기존의 탈북자한테서 취업정보를 얻는다고 했습니다. 탈북자가 무슨 제대로 된 취업정보를 갖고 있겠어요.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에 끼지 못하고 있다는 소리입니다. 탈북자들은 남한 말을 모를 때가 많아요. 문화적 차이도 있고요. 이러저러한 이유로 우리 사회에는 탈북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탈북자라고 이력서를 내면 연락이 오지 않는데 남한사람인 것처럼 속이면 옵니다. 북한 말투면 다시 한 번 물어보고 뽑질 않아요. 이것은 경제적 문제 정도가 아니라 문화적인 차별입니다. "언어가 어떻다. 넌 북한사람이다"하면서 차별하는 것이죠. 이러한 차별은 사회적 소외로 이어지고 아예 사회 밖으로 밀어내는 것입니다. 남쪽 사람들 인식에 이런 것도 있어요. 탈북자들을 이주노동자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북한사람들은 친척이고 한민족입니다. 그런데 다문화라는 말로 그들을 한 테두리 안에 묶고 있어요. 탈북자는 여기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생활인입니다. 자녀도 교육해야 하고, 시간이 지나면 품위도 지켜야 하죠.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는 잠깐 돈 벌러 온 사람이고 돈만 모이면 자신들이 살던 곳으로 가잖아요. 다르게 생각해야죠."

_탈북자 가운데서도 성공한 사람들이 있지 않나요.

"우리 사회 기준으로도 성공한 탈북자들도 많아요. 이들은 남한 사회에 잘 적응해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분들이 탈북자들을 한국사회와 연결해주는 매개가 돼야 하는데 그런 걸 하지 않습니다. 아예 탈북자들과 섞이길 싫어하는 분들도 있어요. 탈북자라는 신분을 드러내기를 원치 않는 거죠. 그런 분들이 더 나서줘야 하는 데 그러질 않아요. 그래서 이 사회의 각종 혜택을 받은 제가 탈북자 사회와 남한 사회를 연결시키는 매개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나중에는 북한과 남한을 연결시키는 역할까지 하려고 합니다."

_매개가 된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뜻인가요.

"남북한의 말이 다 통해요. 하지만 그 뉘앙스는 상당히 다를 정도로 문화적 차이가 큽니다. 이로 인해 탈북자들이 남한사회에 접근할 수 있는 아이템이 적어요. 그래서 생각했던 게 먹거리입니다. 북한통일음식문화연구원을 열고 '통일은 밥상에서부터'라는 말을 내건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탈북자들한테 북한음식을 배우게 해 북한전통요리 지도자로 양성하는 것입니다. 물론 한식도 배우죠. 한국에 문화센터, 문화회관, 요리학원이 얼마나 많아요. 이런 곳에 여기서 배출한 강사들을 파견하면 남쪽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겠죠. 가르치는 것이지만 사실은 남북한 사람이 서로 배우게 되고 더 잘 알게 될 겁니다.

크리스천 탈북자 대학생 모임을 만들어 간사역할도 하고 있어요. 나라에 대통령이 있고, 지역사회에도 그 리더가 있듯이 2만명 시대의 탈북자 사회에도 리더가 있어야 탈북자의 정착을 제대로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생들이 향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리더십을 길러주는 게 모임의 목적이죠. 작지만 장학금도 주고, 진학 유학 취업도 주선합니다. 탈북 대학생들의 생각을 바꾸고 열정이 생기도록 세미나도 매년 합니다. 자녀를 잘 키워보자는 생각에 하나연구회라는 탈북자 어머니 모임도 하고 있어요. 탈북자들은 교육정보가 없거든요."

_북한 전통요리가 경쟁력이 있을까요.

"미국에 가 보니 한식의 세계화가 아직 멀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편으론 북한의 특별한 음식을 개발해서 세계에 내놓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이징덕(중국 베이징의 전통오리요리)'은 일곱 가지 향을 낸다는 북한의 칠향닭찜과 비슷해요. 남한에서는 전주비빔밥이 대표적이지만 황해도 해주에는 색다른 비빔밥이 있어요. 소금을 친 밥을 포함해 모든 재료를 살짝 볶고 간장으로 비빕니다. 맵지도 않고 유통기간도 길어 외국인들이 더 좋아할 거에요. 이번에 먹었던 대한항공 기내식 비빔밥은 비비기가 힘들더라고요. 이것으로 대체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_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을 꾸려가는 데 어려움이 없지 않을 것 같은데요.

"사실 어려워요. 기존에 없던 개념이고 제가 부잣집 딸도 아니니까요. 지금까지는 영어학원인 YBM 회장이 많이 도와줬는데 계속 도와달라 할 수도 없고. 재정 부담이 큽니다. 대상이 가장 열악한 사람들이다 보니 수강료를 낼 형편도 안 되고요. 노동부에서는 제가 경력이 없다고 국고 지원이 안 된다고 합니다. 탈북자인 제가 무슨 경력이 있나요. 노동부도 절차가 있으니 그런 걸 요구하겠지만 관용이랑 배려도 있을 텐데 너무하다는 생각도 했죠. 열정만 갖고 되는 게 아닌 만큼 정부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_탈북의 용기는 물론이고 남한에서의 만학과 탈북자 지원활동 등 도전정신이 남다르신 것 같습니다.

"선대로부터 평양이 고향입니다. 크리스천에 대지주인 조부모의 월남 등 출신성분 때문에 삼수갑산으로 유명한 양강도 삼수군으로 추방됐죠. 그 후 해산에서 고등중학교를 다녔는데 담임선생이 친구들이 다 보는 앞에서 '공부만 잘해서 대학에 가는 줄 아냐. 너희 부모가 그렇게 너저분하게 사는데'라고 했어요. 출신성분을 바꾸려면 공부밖에 없는 데 앞이 보이지 않았어요. 1주일 동안 학교도 가지 않고 죽을 결심으로 농약을 먹은 적도 있어요. 그 뒤 간신히 신의주에 있는 경공업 대학을 갔습니다. 출신 성분이 나쁘면 정치경제학부 같은 데는 갈 수가 없어 식품을 전공했는데 평생의 업이 됐죠. 13년 전 우리가 북한을 탈출하면서 북한에 남아있던 외삼촌이 평안남도 북창의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 얼어 죽었어요. 외삼촌은 6ㆍ25 전쟁 때 인민군 장교로 낙동강까지 갔고 정말 충성한 사람인데 누이동생이 남쪽으로 갔다는 이유로 70 넘은 나이에 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북한에 가족을 남겨둔 모든 탈북자들이 이런 빚을 지고 있어요. 나는 지금 빚을 갚고 있을 따름입니다. 늘 죄송한 마음이죠."

인터뷰=정진황 사회부 차장대우 jhchung@hk.co.kr

정리=김현우 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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