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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예술, 법을 만나다' 法과 불화해온 예술, 소통을 모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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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예술, 법을 만나다' 法과 불화해온 예술, 소통을 모색하다

입력
2010.03.2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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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지음/이다미디어 발행ㆍ464쪽ㆍ1만8,000원

"죄가 없는데도 재판을 받을 뿐 아니라 무지하기 때문에 재판을 받는다는 것이 이 재판제도의 특징이다." (카프카 <변신> 에서)

기존의 가치와 체제를 옹호하는 법과, 기존의 가치가 억압하는 지점을 찾아내려는 예술은 생래적으로 갈등 관계다. 법과 권력은 금기를 만들고 예술은 이를 돌파하려 하기 때문이다.

법과 예술의 이런 갈등 관계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창작의 동력을 주었다. <베니스의 상인> 을 쓴 셰익스피어, <죄와 벌> 의 도스토예프스키, <이방인> 의 카뮈 등 많은 작가들이 법과 정의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남겼다.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이나 볼테르의 <관용론> 같은 책들은 프랑스에서는 문학으로 다뤄진다.

진보적 법학자인 박홍규 영남대 교수는 이처럼 불화할 수밖에 없는 예술과 법의 관계를 고찰했다. 그는 <예술, 법을 만나다> 에서 문학, 영화, 미술 등 예술 장르에서 '법과 정의'라는 주제가 어떤식으로 다루어졌으며 어떤 갈등이 빚어졌는지를 검토하고 양자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를 논의한다. 예술가가 법을 어떻게 표현하고, 법률가가 어떻게 예술을 규제해왔는지를 주로 다룬다.

저자가 파악하는 법과 예술의 핵심은 자유와 자치와 자연이다. 이를 구현하는 가치는 인권, 민주, 생태(평화)인데 이런 가치들이 예술적으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가 그의 관심사다. 특히 표현의 자유와 공공의 가치의 관계가 중요한 화두다. 그는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법정에 선 교사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침묵의 소리> 나 1920년대 미국의 아나키스트 사코와 반체티의 재판과정을 다룬 업튼 싱클레어의 소설 <보스턴> 등을 소개하며 표현의 자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는다.

국가권력이 표현의 자유를 어느 수준까지 허용할 것인가라는 주제는 서구에서도 오랫동안 논쟁이 됐던 것. 저자가 보기에 한국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국가안보나 음란외설,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예술작품을 규제하려는 그림자가 21세기 한국에 여전히 어른거리고 있다고 그는 우려를 표한다.

표현의 자유란 민주주의의 핵심가치라는 점에서 법과 권력이 양산하는 '금서'나 '금기'는 민주주의의 해악이다. 박 교수는 "권력이란 항상 금서나 금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다양한 책읽기를 권한다. 스스로 다양한 책읽기를 하지 않는 정치인, 지식인, 언론인들은 언제나 금서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편벽한 대중 역시 금서 양산에 동조하게 된다고 그는 경고한다.

다양한 예술의 경험만이 금기를 없애고 예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이라고, 그것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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