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사법개혁특위의 법원제도 개선안을 대법원이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조신한 정통 법관으로 명망 높은 박일환 법원행정처장 겸 대법관이 "사법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심마저 잃은 처사"라고 비난한 것은 상징적이다. 한나라당의 개혁안은 내용과 형식에서 헌법 원칙과 정치적 금도를 벗어났다. 소심한 대법원이 세게 맞받은 것은 그만큼 허술함을 간파한 때문이다. 한나라당, 특히 사법개혁특위의 잘못이 크다.
그러나 우리는 "사법개혁 논의의 주체는 사법부"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사법부 독립 원칙에도 불구하고 사법제도의 큰 틀은 헌법으로 규정할 사안이다. 국민의 헌법적 의지를 대표하는 국회가 주도할 일이다. 또 국회와 나란히 국민 대표기관인 대통령 정부가 논의 주체이다. 다만 구체적 내용과 절차에서 사법부의 의견과 독립성, 국민 여론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헌법 원리에 어울린다.
이런 당위에 비춰보면, 한나라당의 제안은 사법개혁 명분을 초라하게 만들 정도로 원칙과 상식에 어긋난다. 대법관을 24명으로 늘리자는 것부터 불순한 의도를 의심받기 십상이다. 상고사건 폭주와 업무 과중을 완화하는 방안은 상고 제한제, 고등법원 상고부 설치 등 다양하게 나와 있다. 이에 대한 진지한 검토는 없이 대법관을 대폭 늘리자는 것은 정권 취향에 맞게 사법부를 개편하려는 정치 책략으로 비난 받기 마련이다.
대법원 바깥에 법무장관, 변협 회장 등이 추천하는 법관인사위원회를 두자는 제안은 더욱 망발이다. 미국처럼 선거로 뽑자면 모를까, 법관 인사를 행정부가 관여하는 외부에 맡기는 것은 삼권분립을 떠나 현실성이 없다. 형량이 들쭉날쭉하다는 비판에 편승해 대통령 직속 양형위원회를 두자는 주장도 이미 지적한 바대로 법관의 재량이 사법의 기본임을 무시하고 있다.
사법부의 그릇된 관행과 이념적 편향은 개혁해야 한다. 그러나 법 원칙과 상식을 짓밟는 논쟁은 정치적 자해 행위가 되기 쉽다. 법률가인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사법개혁특위 위원장이 무리한 논쟁에 앞장선 것은 어리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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