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중 노릇을 다 걸고,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이 문제에 맞설 것입니다."
서울 강남구 봉은사를 '직영사찰'화하기로 한 조계종 중앙종회의 지난 11일 결정을 놓고, 조계종과 봉은사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직영사찰이란 조계종 총무원장이 당연직 주지를 맡아 재정을 직접 관리하는 사찰이다. 조계종은 수도권 지역 포교 체계 강화를 명분으로 봉은사의 반발에도 불구, 중앙종회에서 이 문제를 표결에 붙여 통과시켰다.
봉은사 주지 명진(사진) 스님은 18일 "나는 주지로서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분명히 밝히고 봉은사 대중과 신도들을 보살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열린 법회에서 그는 '직영화 반대를 위한 1,000만 불자 서명 운동'을 언급, 이 문제가 조계종단 전체의 문제로 비화될 수도 있음을 예고했다.
명진 스님은 그러나 "1,000만명 서명은 과장되게 들릴 수도 있다"며 "대중을 동원하거나 신도들이 괴로워하는 일은 절대로 벌이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신 그는 "파사현정"(破邪顯正ㆍ'그릇된 것을 깨뜨리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뜻으로 불교에서는 부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사악함을 물리친다는 의미로 쓰임)이라는 표현으로 이 문제를 대하는 의지를 드러냈다.
명진 스님은 "중앙종회 전날 총무원장 자승 스님을 만났을 때만 해도 그는 '참회합니다. 제 뜻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며 "총무원은 도대체 누구의 의지로 이런 결정이 그리 급하게 이뤄졌는지 밝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몇몇 언론이 이번 결정에는 현 정권에 비판적인 자신을 견제하려는 정치적 압력이 작용했다고 보도한 것에 대해서는 "총무원장 스님도 부인했고, 나도 그렇게 믿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직영사찰화 결정이 법정 스님이 입적하던 날 서둘러 처리된 데 대해서도 명진 스님은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11일 중앙종회에서 봉은사 안건은 후순위였고 일부 종회 의원은 유예를 시키려고 했는데, 법정 스님 입적 소식이 들리자마자 선순위 안건들을 밀어내고 급하게 처리해 버렸다"며 "그러니 모종의 배후 세력이 작업을 했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나 봉은사 문제가 추잡한 자리 싸움으로 비치는 것을 우려했다. 2006년 그가 취임한 이후 봉은사는 재정을 공개하는 등 투명화 조치로 모범 사찰로 인식돼 왔다. 그는 "내가 봉은사 주지 하자고 출가한 게 아니다"라며 "훌쩍 떠날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맑은 도량으로 거듭나고 있는 봉은사가 과거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조계종 총무원은 봉은사의 직영화 저항 움직임에 대해 "수도권 포교 강화라는 목적 외에 다른 의도는 없다"며 "오해는 시간이 지나면 풀릴 것"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한편 참여불교재가연대는 18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총무원은 봉은사와 사전에 대화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지 않았고, 봉은사는 너무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이 문제를 다룰 공론화의 장을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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