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임신한 학생의 자퇴를 강요하는 행위는 차별에 해당한다며 학교측에 해당 학생을 재입학시킬 것을 권고해 학교가 이를 수용했다고 16일 밝혔다. 이번 권고는 청소년 미혼모 인권과 관련한 첫 조치로, 관련 사회제도 개선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청소년 미혼모도 '교육 받을 권리' 있다
지난해 수도권 모 여고 3학년에 재학 중이던 A양(당시 18세)이 동네 오빠인 남자친구(당시 25세)와 교제하다 임신한 사실을 학교측이 알게 된 것은 지난해 4월. 학교 화장실에서 입덧으로 괴로워하던 A양을 학교 보건교사가 우연히 본 것이다. 곧바로 담임교사와 3학년 부장교사는 A양 어머니 양모(46)씨를 불러 '불건전한 이성교제로 풍기를 문란하게 한 학생은 퇴학조치 할 수 있다'는 학교규정을 들어 A양의 자퇴를 종용했다. 교사들은 "교장 선생님이 알면 당장 퇴학"이라며 독촉해 결국 양씨는 자퇴원을 제출했고, 학교측은 같은 달 17일 A양을 자퇴처리 했다.
하지만 양씨는 같은 달 28일 딸을 졸업시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인권위에 진정서를 냈다. 양씨는 "딸이 재학 중 임신한 것은 딸 잘못이 아니고 성교육을 제대로 못 시킨 내 잘못"이라며 "지금 학업기회를 놓치면 딸의 인생 자체를 망칠 수 있다"고 호소했다.
인권위는 진정 내용을 조사한 뒤 "학습권은 기본권 중에서도 핵심"이라며 "그간 징계, 은폐 대상으로 여겨졌던 청소년 미혼모도 교육받을 권리에서 예외일 수 없다"고 학교장에게 A양의 재입학을 권고했다. 학교도 이를 수용, 지난해 7월13일 A양의 재입학 시켰다. A양은 고교졸업 후 현재 수도권의 한 대학에서 세무회계를 전공하고 있으며 이달 17일 100일을 맞는 딸과 직장인인 아기 아빠와 함께 살고 있다. 이들은 아직 결혼식을 치르지는 않았다. 인권위 관계자는 "권고는 이미 지난해 비공개로 내려졌는데, 청소년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준비가 필요하다고 느껴, 청소년 미혼모 토론회에 맞춰 공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청소년미혼모 학습권 위한 시스템 마련 돼야
사실 교육현장의 부정적 인식과 제약에도 불구하고 청소년 미혼모 대부분은 A양처럼 공부를 계속하길 원한다. 인권위가 2008년에 학교를 떠난 청소년미혼모(13~19세) 63명을 대상으로 학업지속 의지를 묻는 설문조사를 한 결과, 50명(80.6%)이 '학업을 지속하고 싶다'고 밝혔다. 2008년 현재 국내 19세 이하 청소년 출산은 3,300여건에 달한다.
한편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인권위 주최로 열린 '청소년 미혼모 학습권 보장' 공개 토론회에서는 다양한 방안이 논의됐다. 토론 참가자들은 "미혼모들이 학교에서 눈치를 보지 않고 학업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학업과 양육을 병행할 수 있게 대안학교 형식으로 미혼모 학생들만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등의 의견을 제시했다.
이태무 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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