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도소싸움축제 D-1일인 16일 청도군 이서면 가금리 예병권(49)씨의 농장. 결전을 앞둔 싸움소 아만세는 막바지 훈련은커녕 한껏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660㎏의 아만세(6)는 일반 황소 서너 마리는 족히 들어갈 수 있는 15㎡ 짜리 특실 우리에서 한약과 미꾸라지가 듬뿍 담긴 보양식을 먹으며 영양 보충 중이었다. 아만세가 특식을 즐기는 동안 삽으로 우리 안의 배설물을 치우고 톱밥을 깔던 예씨는 “지금은 아만세가 절대 안정을 취할 때”라고 말했다.
아만세가 이날 여유롭게 상전 대접을 받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3개월간 산악 달리기와 타이어 끌기로 기초 체력을 다지고, 뿔 치기와 힘겨루기로 기술 훈련까지 마친 그는 D-2일인 15일 체중도 기준치를 거뜬히 통과했다. 650~695kg 을종 체급에 출전하는 그는 이미 체중 조절을 위해 며칠을 굶은 터라 이날 컨디션 조절을 위해 한껏 배를 불리고 있는 터였다.
아만세가 각종 대회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은 연 500만원 남짓. 투자 비용이 300만원이니 밥값 정도는 한다는 것이 예씨의 얘기였다. 150만원 투자에 200만원 수익을 안겨 주는 한우에 비해서는 남는 장사라는 뜻이다. 하지만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할 경우 쪽박을 찰 수도 있다.
18일 첫 경기가 예정돼 있는 아만세는 하루 전인 17일에야 뿔을 간다. 물론 상대 싸움소도 마찬가지다. 직경 31m의 원형 경기장은 이들에게는 생사가 걸린 콜로세움이다.
2006년 경남 의령소싸움대회 3위, 2007년 청도소싸움축제 4위, 2008년 청도 대회에서는 설욕전 끝에 1위에 오른 아만세여서 올해도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고 있다. 이날 하루 종일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던 예씨는 해가 저물자 “좋은 꿈 꿔라”며 아만세의 등을 쓰다듬었다.
40여년간 싸움소를 훈련시킨 청도공영사업공사 경영사업팀 변승영(60) 조련사는 반대로 조금 의기소침한 표정이었다. 공사에서 92마리, 집에서 5마리의 싸움소를 조련하는데 이번 대회에는 그의 농장에서 기른 싸움소 도끼가 출전한다. 하지만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다. 선수로서는 퇴출감인 16세지만 지난 대회 성적이 8강에 들어 이번에 자동 출전하게 됐다. 아들 수달(30)씨에게 소싸움 조련을 대물림하고 있는 변씨는 “돌이켜 보면 한일싸움소대항전을 벌이던 5, 6년 전 축제가 가장 흥겨웠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수백 마리를 길러 내면서 싸움소를 고르는 안목이 탁월하다. 눈이 작고, 앞다리가 짧으며, 몸이 길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 6년 전 고령도축장에서 저 세상으로 가기 일보 직전 변씨의 눈에 띈 칠성이는 몇 년 후 전국소싸움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변씨가 조련한 싸움소로는 번개를 빼놓을 수 없다. 1995∼98년 청도 대회 등 전국 대회에서 밀치기와 목 치기 기술로 9회나 우승한 천하의 싸움꾼이었다. “770㎏ 정도인 번개는 850㎏짜리하고 맞붙어도 물러서거나 지는 법이 없었다”는 변씨는 “번개가 지난해 7월 21세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숨진 것은 소싸움 스트레스 때문일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17∼21일 화양읍 청도상설소싸움장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에는 국내 1,000여마리의 싸움소 가운데 전국 대회 8강 이상 성적을 거둔 132두가 6체급별로 출전, 실력을 뽐낸다. 소싸움에서는 대결 중 먼저 머리를 돌려 달아나는 쪽이 지게 된다.
대구ㆍ청도= 전준호 기자 jhjun@hk.co.kr
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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