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이름을 작품 제목으로 내세운 '하땅세'는 이 극단의 명백한 자기선언이다. 뉴욕대에서 함께 공부한 극단 대표이자 연출자의 부인이 냉습한 공기 속에서 대학로를 오가는 행인들에게 전단을 나눠주는 동안, 남편은 배우들과 연습 또 연습이다.
"돈 든 거 없다. 머리 많이 써서 만들었다." 극단 대표이자 이 무대의 연출자 윤시중(42ㆍ용인대연극과 겸임교수)씨의 말은 선언문보다 견결하다. 그는 "돈을 많이 쓰면 무엇보다 내가 즐겁지 않다"며 "돈이 만들어낸 팀(전문 인력)이 만든 무대들"과의 차별성을 새삼 강조했다. 그는 "연극에 대한 절박함이 만든 극"이라며 "돈, 손님이 없는 연극의 현실을 이기고 살아남자는 조용한 외침"이라 했다. '조용한'이란 표현만 빼면 맞는 말이다.
무대는 폭력적이며 나아가 연극이론가 아르토가 말한 의미로 '잔혹'하다. 이 시대에 "연극이란 미친 짓"을 왜 하느냐고, 명백히 선언하는 궐기의 현장이다. 이를 위해 배우들은 쓰레기를 뒤집어쓰고 코앞에서 해머가 바닥과 벽을 꽝꽝 쳐대는데도 흔들림없이 연기해 나간다. 보는 사람의 오금이 저린다.
밤에는 경비로 생계를 잇는 뉴욕의 어느 연극 연출자가 주인공이다. 호구지책을 위해 연극의 길을 접으려는 그에게 한 극작가가 찾아오면서 무대는 연극을 향한 열정과 광기의 현장으로 거듭난다. 여기에 "영화판으로 뜰 생각이나 하는" 연극배우 지망생들이 가세한다. 이들에게 그로토프스키, 스타니슬라브스키의 배우론은 필요 없다. 무대는 "짐승의 본능을 유지하는 연습" "연기가 아닌 배우가 남는 연극" "대본 속의 상황을 뛰어넘는 연습실", 즉 진정한 연극 정신을 체감케 한다. 관객은 졸지에 '폭력 교실' 수업생이 되는 셈이다.
연출자는 "5년 전 뉴욕서 공부할 때 봤던 극"이라고 했다. "원작자가 한번 공연하고 '망한' 작품인데, 본연의 연극 정신에 대한 메시지를 함께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그의 바람은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는 듯하다. 대학로 코믹 연극의 삐끼들을 뚫고, 옷가게와 호프집을 지나, 건물 4층까지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이 연극을 보러 오늘도 많은 젊은이들은 2, 3층 계단에 줄지어 서 있다. 4월 4일까지, 스튜디오76.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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