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아산 조건식 사장은 18일 아침 회사 출근 대신 현대아산병원을 찾았다. 건강 검진을 위해서였다. 조 사장은 병원으로 향하기 전 임직원들에게 사장에서 물러나겠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직원들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갑작스런 메일이었다.
A4용지 2장분량의 메일에서 그는 "사장으로서 (금강산과 개성) 관광 재개와 사업 정상화를 위해 뛰고 뛰었지만 결국 매듭을 짓지 못했다"라며 "결과에 대한 분명한 책임을 지는 것이 회사와 사업을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24일 주주총회까지 사장으로서 임무를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통일부 차관 출신인 조 사장은 2008년 8월 현대아산 대표에 취임했다.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을 비롯해 현대아산의 대북 사업 전반이 난맥에 빠진 상황에서 현정은 회장이 조 사장을 구원투수로 긴급 투입한 것.
조 사장은 지난해 직원이 북에 억류 상태에 있을 때는 16회나 개성으로 출퇴근하며 사건 해결을 위해 발벗고 나섰고, 남북 당국과 꾸준히 접촉하며 관광 재개를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업 정상화는 미뤄지고 적자가 이어지자 구조 조정을 통해 금강산 관광 중단 전 1,000여 명이었던 직원을 400여명으로 줄이는가 하면 급여를 삭감하거나 유보하는 등 갖은 애를 썼다. 2월까지 현대아산이 집계한 손실액은 2,579억 원으로, 지난달에는 금강산의 버스 등 차량 51대와 개성의 덤프트럭 등 중장비 41대를 포함한 북한 사업소의 자산 일부를 매각하기도 했다.
재계 소식통은 "현대아산은 북한과 거리를 두려는 현 정부와 보조를 맞춰야 했고 그러다 보니 과거 정부 때와는 다른 모습들을 보였는데, 북측은 그런 현대아산을 달가워하지 않았다"며 "더구나 조 사장은 통일부 시절에도 북측과 협상 경험이 많지 않기에 처음부터 조 사장의 역할 자체에 한계가 분명했다"고 전했다.
구원투수(조 사장)가 갑작스레 마운드에서 물러난 게 감독(현 회장)의 뜻이 들어있는지에 대해서도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1년 7개월 동안 의욕적으로 일하며 조금씩 북측과 손발을 맞추기 시작한 조 사장의 사퇴는 회사로서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조 사장의 메일 곳곳에도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최근 북측이 중국과 다양한 채널을 통해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현대아산 사장의 사퇴는 대북 경협 전반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대아산 직원들은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도 "고뇌에 찬 결심으로 이해한다"며 조 사장의 당부대로 사업 정상화를 위해 더욱 힘을 쏟는 계기로 삼자고 입을 모았다. 조 사장의 사임 여부는 24일 주총에서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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