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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희의 몸으로, 마음으로] 음악이 들려온다 갈매기도 춤춘다 예술의 봄…통영은 들썩들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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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희의 몸으로, 마음으로] 음악이 들려온다 갈매기도 춤춘다 예술의 봄…통영은 들썩들썩

입력
2010.03.19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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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중순을 넘어가는데 날씨가 요상하다. 매서운 추위와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황사가 오고 눈까지 내린다. 흐드러지게 피어야 할 봄 꽃이 갈피를 못 잡으니 이맘때 되풀이하는 꽃 구경 가자는 말도 꺼내기 쑥스럽다.

하지만 봄이 성큼성큼 일직선으로 오지 않는다고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런 변화무쌍함이 바로 자연 아니던가. 그렇지만 여기, 우리가 정한 인위적인 봄은 이미 시작됐다. 통영의 봄,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리면 그것이 바로 통영의 봄이다. 작곡가 윤이상의 음악세계를 조명하는 음악제가 올해는 19일 개막한다.

이제 한동안 통영은 음악의 세계에 빠지겠지만 그 음악제에서 한 걸음만 더 들어가면 통영의 문화와 예술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통영이 배출한 숱한 예술가의 이야기를 더듬는 것이야 말로 이 봄 통영 여행의 진짜 재미라 할 수 있다.

음악제를 발단으로 했으니 윤이상(1917~1995)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인 그는 일본으로 유학, 첼로와 작곡을 배웠으며 귀국 후 항일활동을 도모하다 감옥생활을 했다. 서울서 해방을 맞은 그는 다시 귀향해 시인 유치환 김춘수 김상옥, 작곡가 정윤주, 화가 전혁림 등과 민족문화를 발전시키겠다며 통영문화협회를 설립했다.

이후 교사 생활을 하면서 통영의 거의 모든 학교 교가를 작곡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윤이상이 호방하고 열정적이었으며 술을 마시다가도 영감이 떠오르면 벌떡 일어나 곡을 만들었다고 회상한다. 그의 생가는 지금 무가(巫家)로 변해있으며 그 앞에 생가 표식과 윤이상 기념공원이 들어서 있다. 생가 일대는 현재 윤이상 거리로 지정돼 있다.

윤이상 거리와 가까운 항남동에는 김상옥 거리가 있다. 시인 김상옥(1920~2004)의 생가가 그곳에 있었는데 지금은 알아주는 번화가이지만 그가 태어날 당시만 해도 바닷가 마을이었다. 그 바다를 보며 감수성을 키운 김상옥은 갓 만드는 장인이었던 아버지로부터 손 재주를 물려받아 그림도 잘 그렸다. 그의 그림을 모사한 동판 등이 거리 바닥에 박혀 있는데 웬만한 화가의 작품 못지 않다.

김상옥 거리와 이웃해 시인 유치환(1908~1967)을 기념하는 청마 거리가 있다. 이곳에서 눈에 띄는 것은 중앙우체국과 그 옆에 있는 '행복' 시비다. 시비에는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는 것보다 행복하나니라'로 시작하는 유치환의 시 '행복'이 새겨져 있는데 사모하던 여인 이영도(1916~1976)를 향한 것이다.

유치환은 무려 5,000통의 편지를 이 우체국에서 그에게 부쳤다. 이영도가 운영하던 수예점이 바로 우체국 앞에 있었으니 유치환은 수예점 창을 통해 이영도를 보면서도 애끓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화가 전혁림(94)은 '한국의 피카소' '바다의 화가' '색채의 마술사' 등 별명이 많다. 그는 한국의 전통 색채인 청, 백, 흑, 홍, 황의 오방색을 주로 사용해 강렬하고 화려한 그림을 보여주었다. 호탕한 성격이어서 서울을 중심으로 한 아카데믹한 화풍에 이질감을 느꼈고, 그러다 보니 통영에서 자유스럽게 활동하며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의 예술세계를 보여주는 전혁림 미술관이 미륵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전혁림이 한때 전시회도 같이 열며 가까이 지낸 화가가 바로 이중섭(1916~1956)이다. 이중섭은 1953년 통영으로 이주, 한동안 항남동에 거주하면서 화가, 문인 등과 교류했다. 당시 이들이 애용한 술집이 이중섭 집 바로 옆에 있었는데 냉장고가 없어서 술을 우물에 넣었다가 꺼내 주었다고 한다. 이중섭 집 근처를 걸으며, 흔적 없는 그 술집에서 당시 젊은 문화인들이 연출했을 모습을 상상해 본다.

작가 박경리(1926~2008)는 통영에서 태어나 통영에 묻혔다. 그는 활동을 왕성하게 하던 시절 통영을 떠나 있었지만 그래도 작품에 고향 이야기를 많이 넣었다. 대표작 <토지> 에서 조준구의 아들 병수가 아버지의 죄를 짊어진 채 소목장이로 다시 태어난 곳이 통영이다. 한 집안의 욕망과 몰락을 격정적으로 그린 <김 약국의 딸들> 은 온전히 통영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폐암으로 숨진 박경리는 통영시 산양읍에 잠들어 있는데 이 일대는 현재 박경리 공원으로 단장되고 있다.

공예가 김봉룡(1902~1994), 극작가 유치진(1905~1974), 시인 김춘수(1922~2004), 서양화가 이한우(82) 김형근(80), 극작가 주평(81), 조각가 심문섭(67) 등도 널리 알려진 통영 출신 예술가들이니 이들을 꼽는 데만도 열 손가락이 부족할 정도다.

통영 사람들은 문화예술인이 많이 나온 이유로 대개 아름다운 자연을 꼽는다. 아닌 게 아니라 산, 바다, 섬이 함께 엮는 통영의 경치를 보면 감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통영 예술인들이 살았고 거닐었고 상상력을 키웠던 곳에는 기념관, 문학관 혹은 작은 표지석이라도 있으니 그들의 흔적을 찾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항구에서 비릿한 바다 냄새를 맡은 뒤 벽화마을로 변한 동피랑까지 둘러보면 웬만큼 통영 여행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 통영 사량도 지리산…발 밑에 펼쳐진 섬들의 파노라마 "오메 숨 막혀"

"혼자 왔습니까? 그것도 이 시각에?"

버스 기사의 말에 가시가 있다. 처음 보는 승객을 대하는 태도가 불친절하다 못해 퉁명스럽다.

"우리 산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여럿이 함께 올라야 안전합니다. 제 말 듣지 않았다가 고생한 사람, 참 많습니다."

요컨대 나처럼 늦은 오후에 혼자 올랐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만큼 산이 험하고 그만큼 산의 위세가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 사람, 과장이 좀 심하네, 생각은 하면서도 약간은 겁이 났다. 그것은 이 지리산을 올랐던 사람들이 가파르고 위험하다고 쓴 글을 여럿 읽은데다, 아까 통영의 가오치항에서 배를 타고 들어올 때 멀리서 본 이곳 사량도에 하늘을 찌를듯한 뾰족한 봉우리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통영 앞 바다에는 매물도, 비진도, 욕지도, 한산도 등 섬이 참 많다. 이들 섬은 제각각 아름다움을 뽐내면서도 전체가 앙상블을 이루기 때문에 흔히 남해의 보석, 남해의 진주로 부른다.

그 섬 가운데 상도, 하도, 수우도 등으로 구성된 사량도는 섬도 섬이지만 상도에 지리산이라는 전망 좋은 산이 있어 사람들이 모인다. 산림청이 2002년 '세계 산의 해'를 기념해 한국의 100대 명산을 선정할 때 이 산을 포함시킨 것을 보면, 이름처럼 국립공원 지리산의 아류로만 보기 어려운, 나름의 특징과 정취가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게 된다.

새벽부터 서둘러 서울서 내려온 손님에게 핀잔을 주는 버스 기사가 약간 못마땅했지만 그래도 '우리 산, 우리 산' 하며 사량도 지리산에 대한 자부를 드러내는 그의 태도를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었다.

등산로 입구인 내지마을에 내려 길을 물어보니 한 주민이 "여성 분이랑 같이 오면 좋았을 텐데…"하며 야릇한 웃음을 보낸다. 그 말 뜻은 나중에 알 수 있었다.

전체 산행 거리는 8㎞. 4시간이 걸린다고 하는데 오후2시20분에야 산에 접어들었으니 나중에는 어둠을 만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속도를 내야 하는데도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산 굽이를 돌 때마다 발 아래로 황홀경이 펼쳐져 그냥 지나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늘이 흐리고 안개가 짙어 시계가 나빴지만 그래도 이쪽을 보든, 저쪽을 보든 바다와 섬이 그림 같은 경치를 만들고 있다. 흐린 날씨 때문에 잿빛으로 변한 바다와, 하얀 포말을 내며 그곳을 지나가는 배와, 안개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섬들을 보고 있노라니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렇게 경치도 구경하고 사진도 찍다 보니 398m 높이에 불과한 지리산 정상을 1시간이나 걸려 오를 수 있었다. 만약 날이 맑았다면 정상에서 고성, 사천, 남해는 물론 저 멀리 국립공원 제1호 지리산까지 볼 수 있었을 것이고 그렇게 됐다면 이 산은 오늘 온전히 제 이름 값을 했을 것이다. 원래 이 산의 이름은 '지리망산'이다. 산정에서 지리산이 보인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인데 그것을 줄여 부르면서 지리산이 됐다.

정상에서 동쪽으로 이어진 능선을 따라 가는데 파편처럼 갈라진 암릉길이 무척 날카롭다. 발을 헛디디면 저 아래로 추락해 큰 낭패를 볼 수 있겠다.

버스 기사의 말을 되새기며 조심스럽게 능선을 타는데 시간을 잘못 맞췄기 때문에 산 중에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없다. 통영으로 나가는 배가 오후6시면 끊어지기 때문에 오늘 이 산을 올랐던 사람들은 벌써 하산을 했거나 하산을 서두르고 있을 것이다.

위험한 길을 피해 안전한 등산로를 따라 가다 보니 너무 밋밋했다. 농개도, 죽도 같은 예쁜 섬과 돈지, 옥동, 대항 같은 예쁜 마을을 내려다 보는 것은 좋지만 산 타는 재미 그 자체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가마봉의 큰 절벽이 나타났다. 20m 정도 길이의 밧줄을 잡고 어렵게 올라가는데 그제야 제법 스릴이 느껴지면서, 여성 분이랑 같이 왔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등산로 입구 아저씨의 말이 떠올랐다.

험로를 경험했더니 우회로는 재미가 없어서 못 가겠다. 칼날 능선을 따라가 대롱대롱 매달린 줄 계단으로 내려오니 재미가 배가된다. 철로 만든 계단으로 내려오면서 주민들이 이 능선을 유격 훈련장으로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옥녀봉에 이르자 저 앞에 등산객 몇 명이 있다. 산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라 간단한 인사라도 하고 싶었지만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다. 옥녀봉은, 자연 경관이 멋있기로 유명한 통영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경치 가운데 하나다.

그렇게 해서 선착장이 있는 진촌마을로 내려오니 오후6시가 넘어 통영으로 나가는 배를 놓치고 말았다. 본의 아니게 섬에서 하룻밤을 묵었지만 그것은 또 다른 추억이 될 것이다.

사량도 지리산은 바위가 많기 때문에 지리산 보다는 설악산을 닮았다. 산을 타는 재미가 짜릿한데다, 막힌 속을 뚫어주는 다도해의 절경을 산을 타는 내내 볼 수 있다. 만약 날이 맑고 하늘이 푸르렀다면 오늘 내가 본 것보다 훨씬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 단 한번 찾아와 그것을 다 보겠다고 한 것이 욕심일지 모른다. 그러니 맑은 날 기회가 되면 이곳을 한번 더 오고 싶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 여행수첩/ 통영 사량도 지리산

-사량도에 가려면 북통영IC에서 빠져 가오치항으로 가는 게 편하다. 통영항에서도 여객선이 있지만 가오치항에 더 많다. 오전7시부터 오후5시까지 2시간 간격으로 출발한다. 사량도에서 가오치항으로 나오는 여객선은 오전8시부터 오후6시까지 2시간 간격으로 있다. 성인 편도 4,500원. (055)647-0147

-사량도 선착장에는 지리산 등반의 시발점이 되는 내지마을 혹은 돈지마을로 가는 버스가 있다.

-사량도에는 유스호스텔과 민박집이 많기 때문에 숙박에 특별한 어려움은 없다.

■ 봄의 진미 도다리쑥국 한 사발… "속이 다 시원"

경상도에서 식도락을 즐길 도시를 꼽으라면 단연 통영이다. 음식의 맛이나 찬의 푸짐함이 전라도에 버금간다. 해산물이 특히 풍성해 복어, 장어, 멸치, 굴, 멍게를 이용한 다양한 음식이 있다. 충무김밥은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지 이미 오래다.

그 가운데 봄에만 맛볼 수 있는 진미가 바로 도다리쑥국(사진)이다. 봄에 나오는 자연산 도다리와, 역시 봄에 나오는 쑥을 함께 넣어 끓인 국이다.

절반 정도로 잘라 넣은 도다리 살의 쫄깃한 질감과, 향긋하면서도 강한 쑥의 냄새가 어울려 입맛을 돋운다. 고춧가루, 고추장은 일절 쓰지 않고 된장을 넣기 때문에 시원하면서도 구수하며 속을 풀어준다. 원래는 가정집에서 해먹던 것으로 음식점에서 만들어 내놓은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통영의 음식점에서는 도다리쑥국을 봄에 주로 판매한다. 도다리는 양식이 되지만 그래도 봄에 새로 난 쑥과 함께 먹어야 제 맛이 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계절이 지나면 또 1년을 기다려야 맛을 볼 수 있다. 도다리쑥국을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은 시내 중심부에 매우 많다.

박광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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