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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범죄와 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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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범죄와 보복

입력
2010.03.19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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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짜리 초등학생이 어린이를 납치해 잔혹하게 살해한 17년 전 사건에 대한 사법조치의 타당성을 놓고 영국 사회가 새삼 열띤 논쟁을 하고 있다. 최근 우리 언론도 소개한'존 베너블스 사건'이다. 베너블스(27)는 1993년 2월 친구와 함께 리버풀의 쇼핑센터에서 두 살배기 유아를 부모 몰래 유인, 납치했다. 이들은 아기를 기찻길 옆으로 데려가 쇠몽둥이와 벽돌로 때리고 눈에 페인트를 붓는 등 가혹행위를 한 뒤 버려둬 숨지게 했다. 아기 손을 잡고 가는 모습이 CCTV 에 찍혀 붙잡힌 이들은'20세기 최연소 살인자'로 영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 지난 기억과 논쟁이 되살아난 것은 베너블스가 3일 가석방 규정을 어겨 재수감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다. 사법당국은 혐의를 밝히지 않았으나 언론은 아동 포르노 또는 마약 소지, 성범죄 등 갖가지 추리를 내놓았다. 논쟁의 핵심은 93년 재판 때'8년 교화(敎化)'형이 너무 관대하다는 비판이 결국 옳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당시 재판 때마다 성난 군중이 호송차를 에워싸고 해머로 부수는 등 난동이 벌어졌다. 소년들의 부모도 줄곧 위협을 받았다. 형사미성년자인 소년들에게 성인과 마찬가지로 법정최고형인 종신형에 처하라는 요구가 거셌다.

■ 베너블스와 친구는 소년원이 아닌'안전가옥'에서 특별관리를 받았다. 줄곧 개인교수를 통해 공부도 했다. 2001년 가석방될 때, 법원은 생명의 위협을 이유로 소년들과 부모까지 신원을 바꾸도록 허용했다. 이 때문에 집요하게 추적한 타블로이드 황색 언론도 베너블스가 재수감될 때까지 소재를 알 수 없었다. 교정당국은 재수감을 눈치챈 황색 언론을 상대로 법원에 보도금지가처분 명령을 신청했으나 기각됐다. 그러나 잭 스토로 법무장관은 재수감 이유를 밝히라는 요구를 끝내 거부했다. 공정한 사법절차를 해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 황색 언론은 피살 어린이의 어머니를 다시 불러냈다. 그는 "이제야 정의가 실현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대체로 법무부의 조치를 지지했다. 피해자 가족의 슬픔과 분노를 악용한 황색 언론의 요구보다 법치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권위 언론들도 "범죄 보복에 집착하는 집단노이로제의 위험"을 지적하며 "비극을 드라마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범죄자들이 교화를 통해 정상적 인간과 삶으로 복귀하는 것이 상처를 치유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자유민주당은 처벌보다 예방이 중요하다며, 범죄예방청 신설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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