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트렌드 세터들의 '잇(It) 부츠'는? 현기증이 날만큼 아찔한 킬힐(kill heel)? 뉴요커의 경쾌한 발걸음을 연상시키는 토리 버치 플랫슈즈? 천만에, 장화(레인부츠)다.
킬힐이나 플랫슈즈가 여전히 유행하고 있지만 진정한 얼리어댑터의 눈에는 이미 너무 대중적이다. 남다른 안목을 자랑하기엔 역부족. 대신 의외성과 패션감각으로 무장한 패션장화들이 올 봄 계절을 뛰어넘는 가장 주목할 만한 패션 아이템으로 등극했다.
LG패션이 지난 연말부터 직수입판매중인 영국 클래식 브랜드 헌터 제품은 올 들어서만 벌써 1,500여족이 판매됐다. 일부 인기 제품의 경우 웨이팅리스트(구매 대기 신청)만 100명 선을 헤아린다. 아웃도어브랜드 에이글이 지난 해 선보인 러버부츠는 올 들어 지난해보다 판매물량을 3배 이상 늘려 잡았다. 에이글 홍보담당자는 "지난해는 5월부터 (판매에) 탄력이 붙었는데 올해는 2월부터 이미 구매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고 말했다. 패션장화의 인기는 온라인 쇼핑몰 쪽에서도 확연하다. 온라인쇼핑몰 디앤샵은 이달 들어 15일까지 장화가 이례적으로 여성부츠 카테고리 판매량 1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장마철이라 해도 성인들은 잘 착용하지 않던 장화가 패션 아이템으로 거듭 난 배경은 뭘까. 정은실 디앤샵 홍보팀장은 "지난 겨울 롱부츠 유행이 레인부츠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환절기 아이템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에이글은 "한반도의 날씨가 아열대화한다는 분석과 함께 비가 많아진 것이 장화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데다가 갈수록 야외 레저활동 인구가 늘면서 사계절 내내 바닷가는 물론 낚시, 승마, 일상적인 도시생활 등에 두루 활용할 수 있는 범용성이 주목 받은 결과"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환골탈태라고 할만한 디자인 감각이 큰 몫을 했다. 김인곤 LG패션 홍보차장은 "유명 디자이너나 액세서리 회사들과 손잡고 기능성은 물론 세련된 패션감각을 살린 제품들을 내놓은 것이 인기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150여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헌터의 경우 세계적인 럭셔리 구두디자이너 지미 추, 프랑스 여성복브랜드 꼼뜨와 데 꼬또니 등과 협업을 통해 세련된 디자인 상품들을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헌터는 현재 뉴욕의 바니스뉴욕, 런던의 헤롯백화점 등 유명 백화점에 진출, 패션브랜드로 탄탄한 기반을 닦았다.
에이글은 크리스탈브랜드인 스와로브스키와 협업을 통해 '미스줄리엣' 등 한정판을 내놓으며 부츠의 패션화에 열정을 쏟고 있다. 미스줄리엣은 장화 목을 반짝이는 크리스털로 뒤덮어 고급스러운 느낌을 살렸다. 어그오스트레일리아는 양모를 안감으로 덧대 장마철에도 보송보송한 착화감을 주는 '오카스라인'을 올 봄 주력상품으로 출시했다.
이 밖에도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선보이는 대부분의 패션장화들은 기존 장화의 뭉툭한 느낌을 없애기 위해 발목 부위와 종아리 부위의 폭을 날렵하게 처리하고 알록달록한 색상이나 무늬를 더하거나 일반 부츠처럼 구두굽을 높여 세련미를 더한 제품 등을 내놓고 있다.
올 봄 최고 유행 상품을 10만~20만원대에 즐길 수 있는 것도 패션장화의 매력이다. 일반 PVC소재 제품은 4만~8만원대에도 구입이 가능하지만 번들거리는 느낌이 강해 다소 유치해 보인다. 반면 패션감각을 제대로 살린 제품들은 대부분 천연고무를 이용해 일반 가죽부츠와 거의 유사한 질감을 선보인다.
강희진 헌터 담당 MD는 "레인부츠는 스키니진과 티셔츠 등 캐주얼 한 차림에 잘 어울리고 레인부츠와 대비되는 색상의 긴 양말을 신어 포인트 배색효과를 살리면 더 멋스럽다"며 "다만 올 봄의 패션장화는 키덜트 아이템이 아닌 만큼 가능하면 천연고무 소재에 고급스러운 색감을 갖춘 것을 택하라"고 조언했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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