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더 빨리 사건을 해결하지 못해 국민 여러분께 사죄 드립니다."
18일 부산 여중생 이유리(13)양 납치 살해 사건의 수사 결과 발표에 앞서 수사본부장인 김영식 부산경찰청 차장은 고개를 숙였다. 강희락 경찰청장의 질타와 부실 수사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한껏 자세를 낮췄다. 성폭력 사범에 대한 허술한 관리도 인정했다. 범인 검거가 늦었다는 취재진의 추궁에는 "미안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경찰이 이날 발표한 내용은 이전 나온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길태(33ㆍ구속)의 도피 행적과 이양의 납치 과정은 여전히 정리가 덜 됐고 살해 시점도 특정하지 못했다. 경찰은 김길태의 범행이 계획적이라고 판단하고 강간 살인 등의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도주 행적 여전히 오리무중
경찰은 김길태가 지난달 25일 새벽 이양의 시신을 유기한 후 범행 현장인 사상구 덕포동과 주례동, 삼락동 일대의 빈집에서 숨어 지냈다고만 밝혔다. 이달 10일 검거까지 구체적인 동선은 밝혀내지 못했다. 경찰은 김길태가 도피 중 추가로 성폭행 범죄를 저질렀거나 절도 행각을 벌였을 가능성이 있어 이 부분을 추궁했지만 그의 입을 열지 못했다. 경찰은 "김길태가 사상구 일대를 돌아다녔다고만 진술했다"고 말했다. 경찰이 밝혀낸 것은 그가 3일 덕포동 빈집에서 경찰에 발각됐다 도주한 사실과 7일 삼락동의 미용실을 침입해 현금 27만원을 훔쳤다는 사실뿐이다.
경찰은 이양 납치 과정과 관련해 김길태가 지난달 24일 오후 7시 7분께부터 8시 50분께 사이 이양 집에 침입해 140m 떨어진 무당집으로 끌고 갔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김길태는 "술에 취해 기억이 안 난다"는 진술만 반복하고 있어 이날 경찰 발표는 정황 증거를 근거로 한 추정에 가깝다. 이와 관련, 경찰은 김길태가 우발적 범행이란 점을 강조하기 위해 납치 과정에 대해 모르쇠 전략을 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사건을 넘겨받을 부산지검 관계자는 "침입과 납치 과정에 미진한 부분이 많아 자세히 들여다볼 것"이라고 밝혔다.
우발적 범행 아니라고 결론
우발적인지, 의도적인지를 두고 논란이 일었던 김길태의 범행 과정에 대해 경찰은 계획적이라고 결론 내렸다. 만취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기엔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경찰은 그 근거로 이양 집을 좁은 다락방 창문을 통해 침입했고 야간에 미로 같은 골목길을 통해 이양을 140m나 끌고 간 점을 들었다. 시신 유기 과정이 치밀했던 점도 의도적 살인에 무게를 싣게 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김길태는 살해 사실에 대한 경찰 조사에서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그렇게 한 것 같다"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이 살인 혐의를 입증할 직접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데다 김길태가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할 가능성도 높아 검찰의 보강 수사가 불가피해 보인다.
성폭력 범죄와의 전쟁 선포
부산경찰청은 이날 성범죄를 뿌리 뽑기 위한 성폭력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강덕 청장은 "앞으로 아동과 여성의 경우 단순 가출 신고라도 성폭력 범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신고 접수 즉시 관할 경찰서장이 직접 사건 지휘를 맡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폭력 범죄 수배자는 합동 검거조를 편성해 끝까지 추적하고 폐쇄회로(CC)TV 설치 등을 통해 재개발 지역의 치안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의 이날 발표는 여론의 질타가 이어지자 마지 못해 내놓은 뒷북 대책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검찰은 살해 증거를 보강하는 한편, 김길태의 입을 열기 위한 정지 작업에 나섰다. 대검찰청은 범죄심리 분석 전문가로 구성된 심리분석팀을 28~30일 부산지검에 파견해 수사를 지원할 계획이다. 대검 과학수사기획관실 소속 심리분석팀은 심리생리검사 2명, 행동분석 2명, 진술분석 3명으로 구성돼 있다. 김길태가 범행을 계속 부인하면 7명을 모두 파견할 방침이다.
부산=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강성명기자 smk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