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 더 내거나, 한 명 더 늘리거나. 요즘 걸그룹들은 숫자 경쟁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소녀시대와 티아라는 나란히 리패키지 앨범을 냈고, 애프터스쿨은 멤버를 한 명 더 늘려 8명으로 컴백한다. 걸그룹의 이런 모습은 그들의 인기가 예전같지 않음을 보여준다.
지난해 소녀시대의 'Gee' 는 두 달 이상 가요 순위 정상을 지켰고,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다카브라'는 가요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소녀시대의 'Oh!', 카라의 '루팡', 티아라의 '너 때문에 미쳐' 등은 차트 정상에 머무는 기간이 짧아졌고, '아브라다카브라'의 시건방춤이나 '미스터'의 엉덩이춤처럼 춤을 유행시키지도 못한다.
리패키지 앨범이 잦아지는 건 짧아진 컨텐츠의 생명력을 더 많고 더 빠른 새 컨텐츠로 대체하면서 생기는 일이다. 그만큼 걸그룹을 중심으로 한 요즘 가요계는 피로에 젖어 있다. 'Gee'나 '아브라다카브라'처럼 장기 히트하며 트렌드를 바꾸는 곡은 없다. 대신 기존 곡의 스타일을 답습하는 곡들이 넘쳐난다. 티아라의 '너 때문에 미쳐'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Womanizer'와 너무 비슷해 듣자마자 신선함이 떨어진다.
소녀시대의 'Oh!'는 'Gee'와 달리 반복적인 선율만 강조해 흡인력이 부족하다. 물론 걸그룹은 여전히 인기다. 어쨌든 차트 정상은 걸그룹들의 차지고, 걸그룹 멤버들은 예능과 드라마로 진출했다. 하지만 곡의 힘이 떨어지면 시장은 작아진다. 이미 걸그룹에 대한 반응이 작년과 다르지 않은가. 음원 소비가 빨라질수록 트렌드를 이끌 수 있는 새로운 곡은 가수는 물론 시장 판도까지 바꿀 수 있는 원천 기술이나 다름없다.
특히 한국처럼 미국 댄스음악의 트렌드가 몇 개월 사이에 그대로 오는 음악 시장에서는 한 발 더 앞선 트렌드의 파급력이 더욱 커진다. 우리는 빅뱅의 '거짓말'과 원더걸스의 '텔 미'가 시장을 어떻게 바꿨는지 기억하고 있다. 미국 시장을 지배하는 뮤지션들 역시 모두 트렌드 세터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시 걸그룹의 소속사들은 콘텐츠의 물량 공세와 예능 프로그램 출연 같은 음악 외 활동으로 인기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걸까.
어쩌면 요즘 가요계에 계속 표절 논란이 일어나는 건 단지 한두 작곡가의 문제가 아니라 가요계 전체가 어떤 시도도 없이 트렌드를 반복하기만 한다는 방증 아닐까. 걸그룹이든 트롯트 가수든, 정말 귀를 자극할 새로운 곡이 필요하다.
대중문화 평론가 lennone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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