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국가인권위원회가 어느 고교생의 임신과 퇴학에 관한 사례를 공개했다. 이미 지난해 4월 진정이 접수돼 7월에 피해자 구제(재입학)가 결정된 사안이지만, 이례적으로 이를 공개한 것은 현재 정부 차원에서 '불법 낙태 관련 사회협약'을 도출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인 만큼 이에 대한 단서를 제시하기 위한 의미로 보인다. 인권위의 결정과 공개에 공감하며, 청소년 미혼모 문제를 해결하는 데 소중한 모형이 되기를 기대한다.
당시 학교측은 '불건전한 이성교제로 풍기를 문란하게 한 학생'은 퇴학조치 할 수 있는 규정을 내세워 그 학생과 학부모에게 퇴학을 종용했다. 인권위는 헌법(31조)과 교육기본법(3조), 유엔아동권리협약(7조) 등을 근거로 청소년 학습권은 핵심적 기본권으로서 미혼모에게도 예외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개인적 생활복지 문제인 동시에 사회적 복지비용을 오히려 효율화할 수 있다는 점도 제시했다.
이 사례에서 우리가 특히 주목하는 점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권위가 기울인 노력이다. 인권위는 헌법과 법률을 들이대기 전에 변호사, 미혼모지원시설 관계자 등과 함께 학교측과 간담회를 갖고 해결방안을 모색했다. 결국 해당 교육청과 관내 교장회의, 교사회 등이 학습권 보장을 약속했다. 그 학생은 고교를 졸업하고 정상적으로 대학에 진학해 아이를 키우며 학업을 계속하고 있다. 비록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지만 학교와 교육청, 사회가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면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3% 수준으로 알려진 우리나라의 미성년자 임신비율은 대만(13%), 싱가포르(8%), 일본(4%) 등에 비해 낮은 편이지만, 불법낙태가 만연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소홀히 여길 일이 아니다. 청소년 미혼모에게 미국이나 유럽 각국처럼 재정 지원까지 해주는 상황은 아니라도 대부분의 국가들처럼 학습권을 보장하고 학교와 사회에 보호의무를 부여하는 조치는 필요하다. 불법낙태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한 사회적 담론을 시작하면서 미혼모 학습권에 대한 논의부터 매듭 짓는 것도 현실적인 방법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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