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한국은 죽음이란 일생일대의 사건을 어떻게 읽고 있을까? 공연 임박한 두 신작 연극이 그에 대한 답을 준다.
"모두 뚜렷한 동기가 없는 살인. 무작위 선택, 살의가 느껴지지 않는 살인…." 지금 한국을 뒤덮고 있는 암운을 적시한 듯한 말이다. 엽기적 살인을 저지른 남자를 다룬 극단 미학의 연극 '그런 눈으로 보지 마'에서 검사가 뇌까린다.
변호인과 검찰의 공방을 다룬 이 연극의 주인공은 연쇄 살인범이다. 범인의 불행한 가정 환경을 내세워 무죄로 몰고 가려는 여자 변호인, 용의자를 검거했으나 미적대는 법의 판단을 지켜만 봐야 하는 경찰의 불만, 인터뷰 등을 통해 변호사를 스타로 만들려는 언론 등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뒷전에 두고 벌어지는 양상은 법정 드라마의 정석이다.
이성과 감정을 통제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는 뇌의 전두엽이 심각하게 손상돼 상상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등의 사실이 밝혀지면서 극중 현실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오르내리는 사이코패스의 존재와 얽혀간다. 여기에 변호사의 애인인 소설가 주변에서 살인 사건이 터지면서 무대의 비중은 그녀의 진실로 옮겨간다.
인텔리들을 주인공으로 한 법정 드라마의 얼개를 하고 있지만 직장 동료, 건물 주인, 경비, 이웃 아줌마 등 참고인들이 사건에 관해 던지는 진술을 통해 실체적 진실을 추리하는 재미도 객석에 주어진다. 김수미 작, 정일성 연출, 장우진 장설하 등 출연. 26일~4월 4일, 동덕여대 공연센터 대극장. (02)940-4578
"내 마누라는 나를 증오하는 것 같아. 집에서 빈둥거리며 낮잠을 자는 나를 쳐다보는 그 여자의 눈에 그게 보여. 나를 죽이고 싶어한다는 것!" 어느 남자의 넋두리는 이 시대 남성의 위기를 대변하는 건 아닐까. 극단 산울림의 '한번만 더 사랑할 수 있다면'은 원로 연출가와 중견 극작가의 만남으로 독특한 풍경을 일궈낸다.
왕년의 명 PD의 장례식에 모인 초로의 친구들이 그려내는 쓸쓸한 풍경이다. 짜릿한 외도마저도 맥빠진 추억이 돼버린 그들에게 인생은 결국 친구를 하나씩 보내는 과정일 뿐이다. 이혼 얘기 등을 나누던 그들은 고인의 또 다른 모습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각자 자신의 삶 앞에 솔직해진다. 전 남편의 유골을 수습하는 장례식장에 헤어진 부인이 결국 나타나 유골을 수습한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연출가 임영웅씨의 절제된 무대 미학은 이 무대에서도 리얼리즘 미학의 실체를 보여준다. 중견 극작가 윤대성씨의 조밀한 대사는 무대의 무게를 더한다. 국립극단 단장을 지낸 권성덕, '한국 연극계의 찰리 채플린'으로 통하는 이인철, 30년 경력의 손봉숙씨 등 배우들의 중량감만으로도 꽉 차는 무대다. 23일~5월 2일, 소극장 산울림. (02)334-5915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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