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서 '극장'에 관한 처음 기억은 명동과 이어진다. 내가 대여섯 살이었던 시절부터 엄마는 '명동 나들이'에 나를 대동했다. 그러니까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의 명동이 내게는 아직도 '별천지'를 대표하는 그림으로 남아있다. 당시 명동에 가면, 유네스코 회관 2층의 코리아극장부터 명동성당 맞은 편 중앙극장에 이르기까지 멋을 잔뜩 낸 인파로 가득했다. 최근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다시 전성기를 맞은 명동의 분주함과는 다른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명동의 정 가운데 길이 극장으로 시작해서 극장으로 끝나니까 주변에 늘어선 주전부리 장사들은 늘 바쁜 손을 놀려야 했다. 리어카를 개조해서 만든 극장 앞 스낵카는 오징어 굽는 냄새와 군밤이 틱틱 익어가는 소리를 하루 종일 뿜어댔다. 그러니까 오징어 굽는 냄새만 맡아도 영화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는데, 인터넷 예매가 없던 시절에는 표를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선 관람객들과 암표 장사, 하릴없이 극장 간판이나 구경하던 이들이 한데 어울려 오징어 굽는 냄새를 함께 맡았다.
'극장'이라는 단어가 '무슨무슨 시네마'로 바뀌면서 극장에서 우물거리는 먹을거리도 따라 바뀌었다. 오징어나 군밤은 잊혀진 지 오래, 이제는 팝콘과 나초, 도너츠 반죽을 길게 튀긴 츄러스 등이 대신 관객을 맞는다. 집이나 사무실에서 미리 예매를 하고 오니까 길게 줄을 설 일이 없고, 그러니까 극장 앞은 전보다 한산할 수밖에 없다. 점점 헐렁해지는 극장 앞을 지키던 리어카 주인들이 하나 둘 없어지면서 낡은 재생지 봉투에 담아주던 오징어와 군밤은 사라졌다.
우리 사는 방식이 디지털화 되면서 식생활이 바뀌고 있다. 컴퓨터 모니터를 마주하고 요기할 수 있는 인스턴트 음식들이 끝없이 소비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각종 매체나 강연회, 신간 도서의 인기 검색 목록에는 건강에 관한 키워드가 늘 순위에 오르지만, 동시에 컴퓨터를 곁에 두고 극장대신 집에 앉아 DVD를 감상하며 먹기 좋은 즉석 식품들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
인터넷으로 주문을 받는 배달 음식점이 늘어나면서 우리의 상차림은 점점 단출해진다. 배달하기 편한 음식, 그래서 한 그릇 음식 위주로 식생활이 돌아가다 보니 곁들이는 찬이 특징이라 3첩, 5첩 등으로 나누기까지 했던 우리 밥상 문화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저 한 그릇에 담을 수 있는 음식에 단무지나 피클을 곁들이는 것이 일상적인 상차림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칼슘을 보충하는 멸치볶음에 단백질을 듬뿍 주는 두부 부침, 적당한 지방질을 주는 참기름 향기가 솔솔 나는 나물에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 먹는 상차림이, 그렇게 먹어 온 우리의 식생활이 세상의 빠른 변화에도 흔들리지 말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내가 요리사라서 드는 마음인지, 디지털화에 못 따라가는 기계치로서의 소망인지 잘 모르겠다.
박재은 푸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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