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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 유씨씨] 밥 딜런과 루시드 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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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 유씨씨] 밥 딜런과 루시드 폴

입력
2010.03.19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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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먼 길을 걸어야 사람들은 자유 얻나

얼마나 먼 바다 건너야 갈매기는 쉴 수 있나

오 내 친구여 묻지를 마라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밥 딜런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g in the wind)> . 1962년)

그대 떠난 그날 오후 그대 모습

잊을 수가 없네

날 말리다 터져버린 그대 울음

초여름의 거리

비를 부르던 거리의 슬픔

시간은 다시 지나가고

비는 멎었네

(루시드 폴 <레 미제라블> . 2010년)

가사의 중요성이 공통점

중학교 시절 처음 들은 밥 딜런의 노래는 <커피 한잔 더> (One more cup of coffee)였다. 뭔가 인도 음악을 생각나게 하는 특이한 멜로디, 주절대는 듯한 독특한 가수의 음색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의미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영어는 문법과 독해만이 있는 줄 알았던 당시의 중학생 영어 실력으로 이 난해한 가사를 듣고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직 제목으로 돼 있는 후렴구만 들렸다. 얼마나 이것이 강하게 기억에 남았으면 나중에 미국에 가서 공부할 때도 커피 리필을 위해 이 제목을 말했다가 커피 한잔 값을 더 치르고 나오기도 했었다.

대학에 가서는 술집에서 <바람만이 아는 대답> 을 듣고 불렀다. 그 때 난 이 노래가 김민기나 한대수 등 당시 저항 가요와 연관돼 있던 한국 가수들이 만든 노래인줄 알았다. 나중에 기타를 잘 치던 친구가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 (Knocking on heaven's door)를 원어로 불렀을 때 이 모든 심오하고 난해한 노래들의 가수가 밥 딜런인 것을 알았다.

그의 노래가 내게 다른 당시의 '팝송'과 달랐던 점은 항상 가사가 멜로디를 압도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노래 속에서 가사는 멜로디에 구속 받지 않았다. 목소리는 자유롭게 음표를 건너 다니다가, 음표들 간의 긴장이 사라진 어느 지점에서 막혔던 말들을 늘어놓고 사라졌다. 그는 포크든 록이든 그가 세상에 할 말들을 위해 음악을 빌린 시인 같았다.

루시드 폴의 노래를 들었을 때 나는 밥 딜런을 생각했다. 음악도, 가수의 음색도 전혀 달랐지만 가사의 중요성이라는 공통점이 두 가수를 연결시켰다. 밥 딜런이 사회적이고, 상징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이라면 루시드 폴의 가사는 일상적이고 시각적이고 이야기적이었다.

그의 <레 미제라블> 에서는 우리 세대가 고통스럽게 경험했던 광주가 뒤 세대의 대중 가수에 의해 개인화된 정서로 기억되고 있었다. <고등어> 에서는 좌판에 누운 '눈 감는 법도 모르는' 고등어가 자신이 겪어온 지난 이야기를 잔잔히 들려주고 있었다. 밥 딜런의 가사가 현란한 포크 기타나 강력한 전자 기타 위에서 속사포처럼 터져 나온다면, 루시드 폴의 가사는 아주 조심스런 현악기와 음량 적은 관악기의 간소한 배경에서 조용히 읊조려지고 있었다.

한국의 대중음악에서 언어는 오래 동안 잊혀 왔다. 댄스 음악에서 언어는 춤을 위한 리듬 악기 밖에 되지 못했다. 그래서 국적 불명의 영어 가사들이 난무했다. 발라드 노래에서조차 '총 맞은 것처럼' 가슴이 아프다는 직설이 대세였다. 트로트는 아예 '죽여줘요'를 외쳐댔고, 힙합은 직설법을 장르의 정체성으로 만들었다. 아름다운 언어는, 문학은 사라졌다.

아름다운 언어 잊은 대중음악

가수를 지칭하는 또 하나의 명칭인 '음유시인'(吟遊詩人)은 더 이상 한국에서는 쓸 수 없게 되었다. 음악에서 웬 문학이냐고? 조용필의 <고추잠자리> 도, 들국화의 <행진> 도 그 가사들이 없었다면 그저 평범한 음악이 될 수도 있었다. 대중음악이 대중을 위한 음악이 된 것은 가사가 전하는 의미의 전달성이 순수 연주곡들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다. 실용음악과를 졸업한 가수도 필요하지만 문예창작과를 나온 가수도 기대해 본다.

육상효 인하대 교수·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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