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여중생 이유리(13)양 납치 살해 피의자 김길태(33ㆍ구속)가 15일 현장 검증에서 범행 일부에 대해 다시 모르쇠로 돌변했다. 하지만 경찰은 김길태의 범행을 단정할 만한 보강 증거를 추가로 확보, 김길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오전 10시께부터 2시간 30분간 김길태를 상대로 납치 장소인 이양 집을 시작으로 무당집(살해 장소), 파란 대문집(시신 유기 장소), 그의 옥탑방, 현대골든빌라(검거 장소) 등 6곳에서 차례로 현장 검증을 실시했다.
검정색 점퍼를 입고 모자를 눌러쓴 채 수갑을 찬 상태로 현장 검증에 나선 김길태는 시신 유기 사실은 순순히 시인했으나 납치 성폭행 살해에 대해서는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발뺌하면서 대부분 재연을 거부했다.
김길태는 먼저 이양 집이 있는 다가구 주택의 다른 빈집에서 경찰이 라면을 쥐어 주며 "이곳에 온 적이 있느냐. 여기서 라면을 끓여 먹었느냐"고 묻자 "맞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양 집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잡아뗐다.
경찰이 이양이 납치 당시 입었던 옷차림을 한 마네킹을 가리키며 "어떻게 납치했냐"고 질문하자 "증거물이 있다고 하니까 할 말은 없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고 "이(현장 검증)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며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이 집 다락방 창문을 통해 침입한 사실도 "기억이 안 난다"고 말해 경찰관이 대역을 맡아 재연했다.
김길태는 시신을 유기한 사실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그는 "자고 일어나 보니 이양이 숨져 있어 끈으로 손발을 묶어 전기매트용 가방에 넣었는데 다 들어가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김길태는 시신을 가방에 담아 매고 나가는 장면을 재연하라는 요구도 거부해 대역이 연출하자 당시 기억이 나는 듯 오른쪽 팔로 얼굴을 가리기도 했다. 이어 그는 시신 유기 상황을 구체적으로 자백했으나 재연은 하지 않았다.
김길태는 2월 25일 오후 1시께 양부모 집으로 가던 길에 덕포여중 뒷길에서 이양 팬티를 버린 장면은 재연했다.
이날 현장 검증에는 주민 100여명이 따라다니며 김길태를 향해 "살인마! 너도 인간이냐" "고개 들어,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등 욕설을 퍼부었다.
인근 덕포여중 학생들은 창문으로 고개를 내민 채 현장 검증 상황을 지켜 보았으며, 일부는 "길태, 나오기만 해 봐라"고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경찰은 이날 분노한 주민들의 돌발 상황에 대비해 일대에 10개 중대 경찰력을 투입해 철저하게 통제했다.
한편 경찰은 이날 이양 시신이 유기된 물탱크에서 발견된 검은색 비닐봉지 안에 있던 휴지 뭉치와 옆 빈집에서 찾은 검정색 후드티에서 김길태와 이양의 DNA가 검출됐다는 감정 결과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부터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DNA가 검출된 휴지 뭉치는 2개로 이 중 1개에서는 김길태와 이양의 DNA가 함께, 다른 뭉치에서는 김길태의 DNA만 각각 나왔다.
이 비닐봉지는 김길태가 이양을 살해한 뒤 이양 옷가지 등을 담았던 것이고, 후드티는 김길태가 "내가 사용했다"고 실토했던 것이다.
경찰은 김길태가 일부 혐의에 "모른다"며 잡아떼고 나섰으나 추가 보강 증거로 혐의 입증이 충분하다고 보고 구체적 범행 과정을 규명, 19일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한편 경찰은 이날 현장 검증 과정에서 장소별로 취재진의 출입을 막거나 숫자를 제한해 빈축을 샀다.
부산=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강성명기자 sm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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