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의 일터 보니 내 꿈이 에스컬레이터 탄 기분"
“우와! 반도체가 이렇게 만들어지는 거예요?”
지난달 23일 충북 청주시 하이닉스반도체 공장 홍보관에 설치된 반도체 전시장. 100여명의 예비 고등학생들이 전시장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눈을 반짝였다. 전시장에는 반도체에 대한 설명과 반도체 부품 및 제조공정에 대한 전시물들이 망라돼 있었다. 학생들은 제법 반도체에 대해 아는 체를 하며 전문지식을 술술 풀어냈다. “반도체에는 낸드플래시, 모바일, 그래픽 등이 있어.” “반도체의 재료가 되는 웨이퍼는 300㎜를 사용하면 200㎜를 사용할 때보다 반도체 개수를 2.5배 늘릴 수 있지.” 전시장을 둘러보기 전 홍보물을 관람해 학생들의 관심은 더 높았다. 아직 배우지도 않은 반도체에 관해 막힘 없는 설명을 해낸 강형규(16)군은 “평소 반도체 기능인이 돼서 하이닉스에 입사하는 것을 꿈꿨는데 오늘 와보니 미래의 직장에 미리 온 것 같다”며 “열심히 공부해서 꼭 입사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마이스터고인 충북반도체고 101명의 신입생들은 지난달 22일부터 24일까지 사흘간 진행된 입학 전 오리엔테이션을 받기 위해 하이닉스 청주공장을 찾았다. ‘신입생 비전캠프’라고 이름 붙여진 이번 행사는 하이닉스 청주공장의 문화센터에서 숙식과 강의가 이루어졌고 학생들이 직접 공장의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반도체 제조 현장을 견학했고 반도체 기능명장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아직 입학식을 치르지 않은 터라 서먹한 친구들과 게임 등을 하며 친분을 쌓는 프로그램도 함께 했다.
학생들이 가장 뜻 깊었다고 꼽는 시간은 이날 오전에 있었던 ‘명장이 되는 길’이라는 제목의 특강. 수십 년간 반도체 제조현장에서 일하며 품질명장의 자리에까지 오른 기능명장으로부터 그동안 명장이 되기까지 걸어온 길에 관해 설명을 듣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기능명장을 향한 기능인들의 치열한 열정에 감동했다. 또 전날 길근섭 하이닉스반도체 상무로부터 반도체산업의 미래 비전에 대해 듣는 시간도 학생들은 잊을 수 없는 강의였다고 평가했다. 특히 길 상무는 현장 엔지니어로 시작해 임원의 자리까지 오른 경력을 갖고 있어 학생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마이스터고를 졸업하면 하이닉스에 취업할 수 있느냐’는 기본적인 질문부터 반도체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까지 끝없이 질문이 이어져 예정된 시간을 40분이나 넘겨 대화가 종료됐다.
실제 현장 직원들의 생생한 경험을 듣고 난 학생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분들을 직접 만나보니 꿈이 더 명확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또 실제 영 마이스터가 되기 위한 구체적인 비전을 갖고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마이스터고를 ‘꿈을 향한 에스컬레이터’라고 표현한 권오성(16)군은 “기술만 잘 배우면 쉽게 명장의 자리까지 오를 줄 알았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은 길인 것 같다”며 “목표를 향해 정말 열심히 노력해야겠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중학교까지 유학하다가 이번에 마이스터고에 진학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손민석(17)군은 “직접 공장을 방문해보니 우리나라의 기술력이 세계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수준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앞으로 마이스터고에서 세계최고 기술을 배워 졸업하면 중국에서 유학한 경험을 살려 중국에 진출한 기업에서 우리의 기술력을 발휘해보고 싶다”고 주먹을 불끈 말아 쥐었다.
이처럼 실제 현장을 경험하고 꿈을 키워주는 경험은 오리엔테이션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충북반도체고 교내에 반도체 전후공정 장비를 직접 체험 해볼 수 있는 클린룸이 실제와 똑같이 마련돼 있는 것이다. 이 실습실에는 지난해 하이닉스반도체, 세미텍 등 반도체 관련 기업들로부터 기증 받은 37억원 상당의 반도체 관련 장비가 설치돼 있다.
특히 하이닉스반도체는 충북반도체고가 탄생하기까지 아낌없는 투자를 보여주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반도체 증착, 식각 등에 필요한 주요장비 4대와 5,400여점의 장비 부품을 기증했고, 반도체 교육실습실 구축을 위한 기술 자문에도 참여했다. 지금은 교재 개발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국내외를 통틀어 반도체 분야 고등학교는 처음 설립되는 탓에 모든 교재를 새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이닉스는 현장 전문인력을 파견해 고교 교사들과 함께 반도체 공정 교재 개발에 머리를 맞대고 있다.
또 지난해 충북반도체고 교사 16명은 하이닉스반도체 청주 공장에서 제조공정 이론 및 현장 연수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특히 교사 2명은 지난해 4개월간 이론 및 실무 실습 과정을 전문적으로 훈련 받았다. 이들은 올해부터 이 학교에서 반도체 전문교사로 활동하게 된다.
백종인 충북반도체고 반도체전문 교사는 “학생과 교사 모두 실제 현장 기능인들로부터 일대일 교육을 받아 학생들에게 생생한 기술을 전달할 수 있다”며 “이런 협력을 통해 학교는 비용을 절감하고도 최신 기술을 가진 학생을 길러낼 수 있고 기업체는 실제 업무에 필요한 인력을 길러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청주=강희경 기자 kstar@hk.co.kr
■ 하이닉스반도체 길근섭 상무
“충북반도체고를 하이닉스 고등학교라고 생각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하이닉스반도체의 충북반도체고 지원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길근섭(사진) 상무는 앞으로도 실질적인 산학협력이 이루어지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이스터고가 개교하기 전부터 관련 장비를 무상으로 제공해온 것은 물론 교사연수, 교재개발에 이어 앞으로는 장학금 지원, 현장 근로자 교사 파견까지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 덕분에 하이닉스반도체와 충북반도체고의 협력은 마이스터고 성공을 위해 필수적인 산업계 지원의 모범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길 상무는 “학교가 개교하기 전부터 수십 번은 학교를 찾아간 것 같다”며 “앞으로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면서 학교가 필요한 부분을 적극 돕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실질적인 지원이 될 수 있게 맞춤형 지원 모델을 만들 계획”이라며 “이 학교에서 교육받고 졸업한 학생들을 채용하겠다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나서 필요한 전문 인재들을 길러내겠다”고 말했다.
하이닉스 지원계획에는 글로벌 인재 양성을 위한 구체적인 내용도 들어있다. 실제 현장에서는 영어 사용도 많고 외국인과 일할 기회도 많기 때문에 영어 등 외국어 교육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길 상무는 “토익, 토플 등을 위한 영어가 아닌 실제 현장에서 사용하는 ‘반도체 영어’를 가르치겠다”며 “이미 박사급 연구원 중 일부가 교과서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학생들 중 20여명은 대학 수준 이상의 전문적 능력을 갖추도록 집중 교육할 계획”이라며 “이런 학생들을 채용하면 하이닉스의 고졸사원 비율은 4분의 1이상으로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이닉스 반도체는 이번 달 중으로 충북반도체고와 산학협력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협약을 맺고 본격적인 마이스터고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길 상무는 “신입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니 우리나라 기능인의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청주=강희경기자 k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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