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적 측면에서 볼 때 우리사회는 자율과 규제의 균형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있다. 자율 수준의 향상이 사회 발전의 척도가 됨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사회 추세는 규제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사회 각 분야의 자율성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데 신뢰 형성이 난관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규제 강화는 사회적 불신 탓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몇 가지 소식들을 살펴보자.
교육계에서는 자율고에서 사회적 배려 대상자 부정입학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교육계 비리를 척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국ㆍ공립학교 교장의 재산 등록을 의무화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교육의 자율성을 높여준 자율고에서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결과가 교육계의 신뢰 붕괴로 번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에서는 세종시와 관련한 당내 의견 수렴을 위해 중진협의체 회의를 구성하였다. 그런데 언론은 이 협의체에서 세종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각 계파를 대변하는 6명의 중진의원들이 합의할 수 있는 솔로몬의 해법을 찾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1월 선거법 개정을 통해 선거 180일 이내에 실시하는 여론조사는 관할 선관위에 신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그동안 여론조사를 빙자한 불법선거운동 때문이다. 정당이나 언론사를 제외하곤 예외 없이 전체 설문내용과 조사 방식 등에 대해 선관위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큰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이 이슈들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불신을 대변한다. 교육 현장을 이끄는 교장이 재산등록 대상이 된다는 것은 불법행위의 잠재적 대상자로 간주되는 것이다. 당사자인 교장들은 아마도 드라마 <추노> 의 노비들이 얼굴에 노비 낙인을 찍고 사는 것이나 다르지 않다는 자괴심을 느낄 것이다. 과연 그런 대접을 받는 교장들이 학생들에게 정직하게 살라고 훈시를 할 수 있을까? 추노>
사유재산을 감시 받는 교장들이 자율성을 가지고 다양하고 실험적인 교육기획을 할 수 있을지에 회의적이다.
세종시 문제를 다룰 중진협의체의 역할에 비관적인 이유는 이들이 계파를 대표하여 모였지만, 합의 도출을 위해 자신이 속한 계파의 의견을 양보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진협의체에 대한 한나라당의 기대가 진심이라면, 중진의원들에게 결정 권한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계파 수장들은 중진협의체에 참여한 의원들의 자율적 결정을 믿지 못한다. 최소한의 자율성만을 허용할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조사 설문지를 선관위를 통해 규제하겠다는 것은 선거관리를 강화시켜 여론조사의 발전과 다양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선거법 108조의 조사결과 공표 제한과 아울러 설문지 제출 의무조항은 선거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조치는 정치인 자신들이 저지르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유권자를 대상으로 불법을 줄이겠다는 논리일 따름이다.
자율과 책임 부여하는 게 중요
이런 쟁점의 공통점은 권력 집단이 자신을 제외한 다른 집단들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불법이나 기대치 않은 결과를 방지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지극히 단기적 처방이며 그 효과도 의심스럽다. 더욱이 규제 강화는 장기적으로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동차 사고가 많다고 자동차 자체를 없애자는 사람은 없다.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운전자의 안전의식이 가장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앞에서 논한 사안에 대해서도 당사자의 의식을 고양시키고 자율성과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다. 정책 결정자들은 획기적 사고의 전환을 해야 한다.
★이현우 교수가 <아침을 열며> 필진에 새로 참여합니다. 이 교수는 서강대 정외과를 거쳐 미 노스캐롤라이나 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선거학회 부회장과 한국정당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중견학자입니다. 아침을>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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