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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오은선과 안나푸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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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오은선과 안나푸르나

입력
2010.03.19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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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여성 산악인들에게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8,091m)는 비원(悲願)의 땅이다. 1993년 한국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지현옥이 1999년 한-스페인 합동 안나푸르나 원정대의 일원으로 정상까지 밟았으나 하산 길에 실족, 생환하지 못했고, 1984년 김영자는 정상 등정 후 하산 도중 셰르파가 배낭과 함께 카메라를 잃어 버리는 바람에 공인을 받지 못했다.

'풍요의 여신'안나푸르나는 히말라야의 8,000m 급 봉우리 중 1950년 프랑스 원정대에게 가장 먼저 인간의 발길을 허용했으나 이후 60년 동안 가장 많은 인간의 숨결을 앗아간 곳으로도 악명 높다.

■ 안나푸르나는 지난해 가을 '여성 최초의 히말라야 14좌 완등'기록에 도전한 오은선(44ㆍ블랙야크)도 거부했다. 1년 새 8,000m급을 4개나 오른 오씨에게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듯, 거센 바람과 짙은 안개로 정상길을 막았다. 오스트리아의 겔린데 칼텐브루너(40), 스페인의 에두르네 파사반(37) 등과 대기록을 다퉈온 그로선 서두를 법도 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깨끗이 물러섰다. 몇 달 전 낭가파르바트에서 하산 중 숨진 고미영을 생각하며 살아 돌아가는 것보다 큰 목표는 없음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다.

■ 그는 지난해 봄 오대산 월정사를 찾아 저녁 예불을 알리는 범종을 타종하며 비움의 힘을 깨달았다. <범종이 웅숭깊은 소리를 내는 것은 종 속의 텅 빔 때문이다. 속이 가득 차 있으면 큰 울림이 나올 수 없고 깨지거나 금이 갈 것이다. 그랬다. 나 역시 욕심과 집착으로 내면을 꽉 채우면 다른 것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마음을 비우고 고요하게 최선을 다할 때라야 산이 내 속으로 걸어 것이다> 블랙야크 강태선 사장의 자서전 <정상은 내 가슴에> 에 오씨가 직접 쓴 글의 일부다.

■ 4월 말 안나푸르나에 재도전하는 오씨가 고소적응 훈련차 네팔로 떠난 지 꼭 열흘이 지났다. 우연찮게도 그가 떠난 직후 히말라야16좌 완등 기록을 가진 선배 산악인 엄홍길(50)씨가 지난 10일 '공학과 인간과의 만남'이란 주제의 서울대 특강시리즈의 의 첫 강연자로 나섰다. 이 자리에서 그는 "안나푸르나를 오르기까지 4번 실패했고 눈 앞에서 동료도 잃었다. 그러나 실패와 위기야말로 가장 큰 기회였다. 위대한 일일수록 고난과 도전 없이 이뤄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오씨도 같은 생각일 게다. 큰 꿈을 향해 가는 그의 건승을 빈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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