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건설에서 제안한 쓰레기 포장 방식은 현실성이 없습니다. 대신 저희 기술은..."
16일 경기 성남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강당. 4층 입찰 심사장에서 진행 중인 심사과정이 폐쇄회로(CC)TV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입찰참가업체의 설계ㆍ시공 제안(프리젠테이션)부터 기술위원의 질문, 평가위원의 채점까지 전 과정을 누구나 지켜볼 수 있다. 경쟁업체 기술을 깎아내리는 민감한 발언까지 생중계된다. 강당 안에서는 건설ㆍ설계 업체 임직원 150여명이 심사장 안 상황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이날 입찰은 LH가 발주한 인천 영종하늘도시의 '자동 클린넷' 시설공사. 생활 쓰레기를 모아 대형 관을 이용해 고속 운반하는 처리시설이다. 총 공사비는 1,345억원. 환경 관련 공사로는 꽤 큰 규모다. 현대건설, GS건설, 대우건설 등 대형 건설사가 각각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에 참여했을 만큼 경쟁이 치열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LH의 입찰 심사장 분위기는 이렇지 않았다. 말하자면 '007 작전'이었다. 심사위원 명단은 당일까지 비밀에 부쳐졌고, 심사 방법도 비공개였다. 심사장 안에는 아무도 출입할 수가 없어 어떤 얘기가 오가는 지 알 도리가 없었다. 철통보안을 통해 비리를 원천봉쇄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비밀주의는 더 큰 의혹을 낳는 법. 업체들이 모든 심사위원 후보들을 '맨투맨'접촉한다는 얘기도 들렸고, '이미 ○○건설로 내정됐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래서 LH는 이지송 사장 지시에 따라 이달부터 입찰심사 방식을 180도 바꿨다. 아예 숨김없이 다 보여주는 쪽으로. 심사위원명단은 심사 1주일 전 홈페이지에 공고됐고, 심사절차와 방법도 공개됐다. 입찰참여 업체가 심사위원을 검증하는 절차에도 직접 참여하게 했다. 심사장 안에는 LH 감사실 직원 등이 참관단을 구성해 입회하는 한편, 내부 상황을 CCTV를 통해 외부로 생중계했다.
이날 입찰에 참가한 업체들의 반응은 대체로 신선하다는 평. 한 건설사 관계자는 "심사가 비공개일 때는 '카더라' 식의 소문이 무성했었는데, 이렇게 직접 심사 과정을 지켜 볼 수 있게 된다면 뒷말이 나올 여지가 없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부 건설사 직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LH가 이렇게 하면 다들 이런 식으로 바꾸려고 하지 않겠냐"는 얘기를 나누며 새 입찰심사 방식에 촉각을 곤두세우기도 했다.
점수는 평가위원들의 채점 집계가 끝난 이날 오후 6시 바로 공개됐다. GS건설이 86.88점을 얻어 대우건설(85.63)과 현대건설(84.38)을 근소한 차로 제치고 1위에 올랐다(최종낙찰자는 17일 발표). 점수가 발표된 순간, 초조하게 채점 결과를 지켜보던 건설업체 직원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뒤이어 평가결과표의 세부 내용도 낱낱이 공개됐다. 이 역시 과거 업체별로 자기 회사 점수만 문서로 통보 받던 것에 비해 확연히 달라진 점이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