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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전의 문화재 다시보기] <26> 경주계림로 출토 황금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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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전의 문화재 다시보기] <26> 경주계림로 출토 황금보검

입력
2010.03.19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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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은 지난 2월 2일부터 4월 4일까지 "황금보검을 해부하다"라는 주제로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 1500여 년 전 죽은 신라인의 이름 모를 무덤에서 1973년 출토된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황금보검이다. 발굴된 후 5년여의 과학적인 보존처리 과정을 거쳐 이제 그 완전한 모습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게 된 것이다.

이 검은 알려진 대로 1973년 계림로 공사도중 발굴된 것이다. 경주고분발굴조사단이 지금의 천마총인 155호 고분의 발굴을 진행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이 155호분 발굴에 세간의 시선이 쏠리고 있을 동안 시내에서 첨성대에 이르는 남북간 새로운 계림로가 계획되어 아무런 사전 발굴조사 없이 업체에 맡겨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과정에 신라시대유물이 다량으로 발견되어 공사는 중단되고 긴급수습발굴조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처음 단순한 조사로 생각한 것이 신라공동묘지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알게 되어 발굴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당국은 서울과 대구의 참가 가능한 대학박물관을 조사에 긴급 투입하게 되었고 아울러 국립경주박물관도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황금보검이 출토된 무덤은 이때 경주박물관에서 발굴한 무덤으로, 14호 무덤으로 번호를 붙였다. 계림로 공사에 필요한 장비를 동원한 건설업체는 공사가 중단되자 수습발굴조사는 기껏 2,3일이면 끝날 것으로 판단하고 동원된 장비는 그대로 현장에 남겨두고 발굴조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조사가 완료되기까지는 2,3개월도 더 소요되었다. 결국 건설업체는 도로 공사는 고사하고 남겨둔 건설장비 사용료도 낼 길이 없어 결국 문을 닫게 되었다는 소식이 발굴도중 전해지기도 했다. 공사도중 문화재발굴로 업체가 문을 닫은 최초의 일로 기록될 것이다.

계림로가 이런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발굴 후 37년 만에 그 정리연구 결과를 세상에 내 놓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보검이 어떻게 신라 수도 경주, 그것도 외형이 큰 봉토무덤이 아닌 공동묘지 성격의 조그마한 무덤에서 출토된 것인지가 궁금증을 자아냈다. 흑해연안 지역에서 이러한 형태의 검이 발견된 예가 있어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지역의 어느 곳에서 제작된 것으로 연구자들은 생각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X선 조사결과 검 집안에 짧은 칠검이 있다는 것과 무덤의 주인공이 비단옷을 입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러한 사실로 무덤의 주인이 당시 귀족이었음은 알게 되었지만 문제는 두 사람의 남성이 나란히 한 무덤에 묻혔음이 밝혀져 쌍둥인지, 형제가 동시에 죽어 묻혔는지 새로운 수수께끼로 남았다.

상상을 하게 되면 여러 가지 해석을 할 수도 있겠지만 고고학의 영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는 발굴조사도 중요하지만 이를 해석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과제임을 알게 한다. 결과적으로 고고학의 한계를 새삼 느끼게 한다. 이 황금보검은 6세기 유물로 보물 제635호로 지정되어 국립경주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다.

경기문화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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