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IT세계에 영원한 동지는 없었다.
세계 최고 IT 기업인으로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 스티브 잡스 애플 CEO와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 '스마트폰'이란 외나무다리에서 혈전을 벌이고 있다.
과거 마이크로소프트(MS)라는 공동의 적에 대응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며 우정을 다져왔던 1955년생 동갑내기 최고경영자(CEO) 잡스와 슈미트는 이제 MS가 아닌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15일 뉴욕타임즈(NYT)에 따르면 잡스와 슈미트의 경쟁은 기업인수, 아이폰 응용 분야는 물론, 특허권 소송까지 이어지는 등 극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둘 도 없이 친했던 두 사람이 왜 갑자기 선의의 경쟁자를 넘어 '원수'가 된 것일까.
2008년 8월까지 약 3년간 슈미트가 구글 회장직과 애플 이사회 멤버를 겸임했을 당시에도 잡스는 슈미트의 통찰력과 경험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슈미트는 애플 아이폰 개발 당시 G메일이나 구글맵 초기 버전을 디자인하는 데 협력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슈미트가 애플 이사를 사퇴한 뒤 구글이 온라인 광고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휴대폰 사업을 적극 추진하면서부터 둘 사이는 어긋나기 시작했다.
NYT에 따르면 검색 시장의 최강자인 구글이 미국 3대 이동통신 서비스업체 'T-모바일'의 스마트폰 전용 운영체제(OS)인 안드로이드를 개발하면서 양사는 협력관계에서 경쟁관계로 바뀌었으며, 전세계적으로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휴대폰이 대거 출시되면서 잡스는 슈미트에 대해 심한 배신감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잡스는 올해 1월 구글이 대만의 휴대폰 업체 HTC와 손을 잡고 '넥서스원'을 출시하며 애플 아이폰과의 전면전을 선언하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잡스는 당시 애플 직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검색 시장에 진입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휴대전화 시장에 들어왔다"며 "구글은 아이폰을 죽이려 하고 있지만 그렇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NYT는 "잡스는 옛 친구인 슈미트가 자신의 주머니를 훔쳤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아이폰을 위협하는 안드로이드가 못 마땅했던 잡스는 급기야 이달 2일 HTC가 아이폰의 사용자환경(UI)과 하드웨어 등에 대한 20건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미국 델라웨어주 연방 지방법원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했다.
잡스는 "경쟁사들이 애플의 특허기술을 훔쳐가는 것을 방관하지 않겠다"며 "경쟁자들은 고유한 기술을 창조해야지 훔쳐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애플의 이번 소송이 제조사인 HTC를 타깃으로 한 게 아니라 브랜드 소유자인 구글을 상대로 한 간접 소송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번 싸움의 승자를 예측하긴 힘들지만 개방성을 중시해 동맹 세력을 넓혀가고 있는 구글이 조만간 아이폰의 아성을 바짝 추격할 것이라는 예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또 1980년대 MS가 다른 하드웨어 제조사에 문을 활짝 개방하며 도스와 윈도로 애플의 매킨토시를 누르며 애플을 궁지에 몰았던 상황이 재연될 것인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잡스는 이 같은 뼈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슈미트를 집중 견제하려는 상황이다. 두 사람의 감정 싸움은 모바일 광고시장과 인터넷 브라우저 시장에서도 불거졌다.
애플은 구글이 온라인 광고를 핵심 수입원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겨냥해 모바일 광고업체 '콰투로 와이어리스'를 약 9억원에 인수했으며, 구글은 애플의 노트북인 맥북에 대항해 크롬 OS를 탑재한 소형 넷북을 출시할 예정이다.
NYT는 "잡스와 슈미트는 단순한 경쟁의 차원을 넘어 감정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데이비드 요피 교수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싸움이 점점 추악해져 가고 있다"며 "애플을 꺾기 위해 구글은 매우 공격적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이 경우 애플 아이폰은 가격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현주 기자 korear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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