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열린 제82회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제프 브리지스에게 4전 5기 끝에 남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크레이지 하트'는 15일 현재 국내 영화관 5곳에서만 상영 중이다. 동네마다 대형 멀티플렉스가 들어앉은 요즘이지만 '크레이지 하트' 보기는 하늘에서 별 따기 수준이라 할 만하다. 제프 브리지스가 수상한 후에도 관객이 늘지 않았다. '크레이지 하트'의 홍보 관계자는 "아카데미상 시상식 전후 분위기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크레이지 하트'는 그나마 행복한 편에 속한다. 작품상 등 주요 부문 상을 받은 영화들이 아직 개봉 시기조차 못 잡고 있다. 아카데미상 특수는커녕 되레 역풍을 맞을지 모른다는 볼멘 소리도 들려온다. 미국 영화의 상징인 아카데미상이 한국에서 홀대받는 굴욕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캐슬린 비글로 감독이 전 남편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와 맞대결해 작품상과 감독상 등 6개 부문을 수상하며 압승한 '허트 로커'의 국내 개봉은 기약이 없다. 수입사 케이엔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이 영화는 빨라야 4월말 국내 관객과 만날 수 있다. 케이엔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올해 개봉한다는 방침만 정해져 있다. 아카데미상 특수는 딱히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허트 로커'는 '아바타'와 함께 이른바 '장미의 전쟁'이라 불리는 경쟁구도를 만들며 대중의 관심을 끌었지만 정작 극장가에는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산드라 불록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블라인드 사이드'는 이르면 4월 15일 지각 개봉한다. 지난해 11월 미국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당초 국내 수입사들이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작품. 직배사인 워너브러더스코리아를 통해 뒤늦게 개봉하는 형국이다.
흑인 감독이 만든 영화로는 최초로 아카데미상 작품상 후보에 오르며 여우조연상(모니크)과 각색상을 수상한 '프레셔스: 사파이어의 소설 푸시에 기초한'은 국내 개봉 전망이 더욱 어둡다. 이 영화는 아직 수입 소식조차 알려지지 않고 있다.
아카데미상 특수가 사라진지 오래라지만 올해는 이처럼 유달리 외면 현상이 두드러진다. 지난해 작품상 등 8개 부문을 수상한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시상식 얼마 뒤 개봉, 110만명의 관객을 모으며 오스카 덕을 톡톡히 봤다. 지난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케이트 윈슬렛의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도 오스카 후광으로 49만명의 관객을 기록, 흥행에서 짭짤한 재미를 봤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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