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3시30분 서울 강동구 서울지하철 8호선 천호역. 하행선 맨 앞쪽 승강장에 서 있다가 암사역 방면에서 도착한 전동차의 기관실에 올라탔다. 2평 남짓한 기관실은 생각보다 좁고 어두웠다. 조그만 의자 하나가 있었고, 나머지는 복잡한 계기와 운전장치뿐이었다.
모니터로 출입문이 안전하게 닫혔는지를 확인한 김철수 기관사가 운전대(주간제어기)를 몸 쪽으로 당기자 육중한 전동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차해 있던 30초 동안 15년 경력의 베테랑 기관사는 일사천리로 각종 계기를 조정했다. 그는 동작마다 검지 손가락을 얼굴 앞에 갖다 대고 뭔가를 중얼거리면서 버튼을 조작했다. 그는 이것을 기관사들이면 모두 하는 '지적 확인 환호'라고 했다. 군대의 복면복창과 같이 반복 동작마다 집중력과 긴장을 잃지 않기 위한 구호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동차가 출발하기 전까지 그는 기자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자동차 기어처럼 생긴 운전대는 당기면 가속(액셀러레이터)이 붙고, 전동차 진행방향으로 밀면 감속해 정지(브레이크)했다. 구간별 평균 속도는 시속 50~60㎞ 정도. 강동구청역에 도착하자 김 기관사가 우측 승강장에 설치된 모니터를 주시했다. '-200. 양호' 표시등을 확인한 뒤 출입문을 열었다. 정지선에 200㎜ 덜 갔다는 뜻으로, 오차가 600㎜ 안에 들어가야 문이 열리도록 설계됐다. 총 길이가 120m나 되는 전동차를 이 간격 내에 세운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출입문을 여닫을 때 안전문제는 특히 신경 써야 할 사안이다. 모니터에 잡히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갑자기 시민이 달려오는 경우엔 출입문에 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해진 출발시간을 지켜야 하는데 닫히는 출입문에 우산 끝을 넣어 무리하게 타는 승객이 가장 얄밉다"며 웃었다. 7㎜ 넘는 물체가 문에 걸리면 자동적으로 운행이 정지된다.
천호역에서 기관실에 탄 지 20분이 지났는데도 앞에 보이는 건 검은 입을 벌리고 있는 터널뿐이다. 시민들이 타는 객실에서는 보이지 않는 터널만 눈에 가득하다. 레일이 긁히는 소리와 덜컹거리는 소리가 합쳐져 귀도 어지러웠다. 잠실승무관리소 구유택 차장은 "기관사는 지하터널에서 수많은 시민들의 모든 것을 혼자서 책임지는 외롭고도 부담스러운 직업"이라고 평했다. 그래서인지 산성역 진입구간에서 갑자기 밝은 세상으로 나오자 김 기관사의 표정이 훤해졌다.
"땅 위로 나오니 공기부터 다르고 숨통이 트이네요!" 시야가 확 트이자 그는 운전대를 당기기 시작했다. 순간 속도가 82㎞까지 올랐다. 입가에 미소를 띤 그는 거대한 전동차 행렬을 이끄는 '손 맛'을 만끽했다. 그러나 지상의 행복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후 모란역에 도착하자 그는 종점을 알리는 방송을 내보냈고, 전동차는 마지막 승강장을 지나 수 백여 m를 더 들어갔다. 그런 뒤 김 기관사는 기관실에서 객실로 통하는 문을 열고 나와 반대편 기관실을 향해 뛰었다. 그 동안 레일의 교차지점에 설치된 선로전환기는 전동차가 상행선으로 되돌아가도록 방향을 바꿔 놓았다.
그는 이렇게 하루 3, 4시간 넘게 지하에서 긴장상태로 운전하면 완전히 녹초가 된다고 했다. 특히 5~8호선은 본래 자동운전시스템으로 가동되지만 최근엔 에너지 절약을 위해 수동운전을 고수하고 있다.
김 기관사는 연인들이 싸우다 여성이 레일위로 뛰어내렸다가 마음이 바뀌었는지 전동차 충돌 직전 반대편 레일로 건너가 가슴을 쓸어 내린 기억, 옛날 선배들이 기관실에서 생리현상이 급해 신문지를 깔고 해결한 일 등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그는 "기관사에게 승객의 안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며 "기관사를 운수(運數)사업이라고도 하는데 저는 인명사고를 한번도 겪지 않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외롭고 힘들어도 수 천명의 시민들을 내가 직접 운전해 목적지까지 무사히 모신 뒤 밀려오는 그 뿌듯함은 누구도 모를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서울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는 도시철도공사(사장 음성직)는 이 달 13일부터 '시민의 벗'인 지하철에 관해 각종 궁금증을 해소 시켜주는 고객서비스를 시작했다. 도시철도공사 관계자는 "매주 토ㆍ일요일 오후 2~6시 '기관사 체험행사'를 연중 실시해 1,152명의 시민들에게 색다른 체험을 선사할 예정"이라며 "참여한 시민들을 향후 모니터링 요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말했다. 참여 희망자는 도시철도 홈페이지(www.smrt.co.kr)에서 신청서를 내려 받아 메일(5678cs@smrt.co.kr)이나 팩스(02-6311-2370)로 신청하면 된다.
박석원 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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