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불굴의 정신으로 고난을 이겨내기도 하고, 그것에 굴복해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산에는 성공과 실패의 이야기가 함께 있다. 산에서 펼쳐진 도전의 역사와 생사를 가르는 극적인 이야기를 소개한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처음 오른 산악인은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힐러리(1919~2008)다.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처음 완등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라인홀트 메스너(66)다. 그렇다면 에베레스트의 두번째 등정자와, 8,000m급의 두번째 완등자는 누구일까. 잘 알려지지 않은 전자와 달리 후자는 꽤 널리 알려져 있으니 그가 바로 폴란드의 예지 쿠쿠츠카(1948~1989ㆍ사진)다.
물론 쿠쿠츠카는 14좌의 두번째 완등자가 된 뒤 축하인사를 받고는 "여러분은 에베레스트를 두번째로 오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합니까"라며 2인자의 설움을 토로했지만, 그래도 메스너와 벌인 불꽃 튀는 레이스 때문에 최강 산악인의 한 명으로 인정 받는다.
그가 1979년 세계 4위봉 로체(8,516m)를 오르면서 8,000m 급에 처음 섰을 때 메스너는 이미 여섯 개를 등정한 상태였다. 출발에서 큰 차이가 났으니 엄밀히 말하면 경쟁은 성립될 수 없었다. 쿠쿠츠카는 급피치를 올리며 따라 붙었지만 결국 메스너에 1년 늦은 1987년에야 완등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메스너가 16년에 걸쳐 달성한 기록을 그는 그 절반인 8년 만에 이루었다.
시간 단축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등반 스타일이었다. 그는 로체를 제외한 나머지를 새 루트를 개척하거나 겨울철에 오르는 등 가혹한 조건에서 산에 올랐다.
두 사람이 전개한 뜨거운 경쟁은 산악계와 언론으로부터 지대한 관심을 받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알피니즘은 순위를 가리는 경기가 아니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메스너가 전통적인 산악 강국의 풍족한 분위기에서 넉넉한 지원을 받으며 활동한 것과 달리 쿠쿠츠카는 후진국의 낙후하고 폐쇄적인 환경 속에서 어렵게 산을 올랐다. 그는 그래서 낡고 불편한 장비를 사용했고, 서구 클라이머들이 버리고 간 장비를 얻어 쓰기도 했다.
극한의 강력한 등반을 추구하며 세계 등정사에 거대한 자취를 남긴 그는 1989년 로체의 남벽을 오르다가 로프가 끊어져 추락사한다.
박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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