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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시인 차창룡씨 해인사로/ '시를 버리고 시를 찾고… ' 시인의 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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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시인 차창룡씨 해인사로/ '시를 버리고 시를 찾고… ' 시인의 출가

입력
2010.03.15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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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부처님이 중요한 행적을 남긴 인도 8대 성지를 순례하면서 출가를 결심했습니다. 특히 부처님의 입적(入寂)지인 쿠시나가르에 있는 열반상을 보며 '부처님이 정말 살아있는 분이셨구나' 하는 생생한 실감과 함께 육친의 정을 느꼈습니다. 이분께 더 깊이 다가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차창룡(44) 시인이 13일 합천 해인사로 출가했다. 1989년 시인으로, 1994년 문학평론가로도 등단한 그는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등 4권의 시집을 냈고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웅숭깊은 사유,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으로 호평 받아온 우리 시단의 중견이다.

시인 고은, 소설가 김성동씨 등 출가했다가 환속해 문학에 매진한 작가는 더러 있었지만, 차씨처럼 문단에서 활발히 활동하다가 출가한 경우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그는 앞으로 1년 가량 행자 생활을 거쳐 사미계를 받은 뒤, 조계종 강원이나 승가대학에서 4년 간 교육을 받고 비구계를 받아 정식 스님이 되는 과정을 밟게 된다.

워낙 조용히 주변을 정리했기 때문에 문단에서도 차씨의 출가 소식을 아는 이가 드물다. 용케 소식을 듣게 된 문인들은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손택수 시인은 "처음 출가 소식을 들었을 땐 너무 놀랐지만, 차 시인이 평소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신변에 힘든 일이 많았던 것을 생각하니 '올 것이 왔구나' 하는 허탈한 마음도 들었다"고 말했다.

출가 하루 전날인 12일 서울 인사동에서 차씨를 만났다. 불문에 들기 직전 기자와 만나는 것을 저어했으나 거듭된 요청에 잠깐 시간을 내줬다. 그는 "맺은 인연도, 가진 것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어제 사랑니를 뽑아 '몸단장'도 마쳤다"며 웃었다. 그는 2008년 이혼했고 자녀는 없다. 어머니가 반대했지만 나이 든 자식의 결심을 꺾진 못했다. 차씨는 "40대 중반에 너무 늦게 출가하는 것 아니냐는 분들도 있지만, 부처님도 당시로 볼 때는 중년에 해당하는 29세 때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힌두교의 출가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힌두교에선 인생을 학습기, 가정생활기, 은둔기, 순례기로 나눈다.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기른 뒤에야 비로소 불교의 출가에 해당하는 은둔기에 들어서는 것이다."

차씨는 서울 불광사 회주인 지홍 스님을 은사 스님으로 출가했다. 은사 스님은 행자가 사미계를 받을 때 머리를 직접 깎아주는 등 출가자의 평생 스승이 돼주는 존재다. 차씨에게 지홍 스님을 소개해준 사람은 불교계에 발이 넓은 이진영(52) 시인이다. 그런데, 이씨도 22일 출가한다는 말이다.

1986년 등단한 이진영 시인은 시집 <수렵도> <아무도 너의 깊이를 모른다> 등을 출간했고, 2001~06년 문학 전문 출판사를 운영하며 계간지 '문학과 경계'를 발행했다. 부인과 두 자녀를 둔 그는 스님의 결혼을 허용하는 태고종으로 출가한다. 스무 살 때 잠시 출가한 경험이 있는 그는 "지난해 6월 차씨에게 은사 스님을 소개해주고, 두 달 뒤 함께 인도 다람살라를 여행하면서 삶의 전환점을 마련하자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1993년부터 우울증에 시달리며 다섯 차례 입원 치료를 받기도 했던 그는 "출가를 통해 생활인으로서, 시인으로서 새로운 정신 세계를 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차씨는 자신의 다섯 번째 시집 원고와, 불교 신화를 곁들여 인도 성지순례의 경험을 풀어낸 산문집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다. 이씨도 조울증, 알코올중독으로 고통을 겪었던 자신의 체험을 진솔하게 드러낸 산문집과 시집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시를 계속 쓸 것이냐"는 질문에 차씨는 담담하게 답했다. "시를 안 쓴다는 생각은 없다. 꼭 써야 한다는 마음도 없다. 문학도 근본적으로 욕망의 세계이고, 그런 의미에서 세속의 장르다. 다른 욕망은 몰라도, 좋은 시를 쓰고 싶다는 욕망에서만큼은 20년 넘게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문학이란 세속의 영역에만 묶일 수 없는 드넓은 영역이다. 만약 시를 계속 쓰게 된다면 예전과는 달라질 것 같다."

만남 도중 차씨는 속세에서 자신의 마지막 거처였던 서울 흑석동 셋집에서 걸려온 세입자의 문의 전화에 친절히 응대했고 "즐겁게 생활하시길 빌겠습니다"라는 인사말로 전화를 끊었다. 기자와는 묵묵한 악수로 작별했다. 그가 속세의 마지막 밤을 보낸 곳은 노모가 계신 여동생의 집이었다.

글ㆍ사진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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