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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경제연구원과 함께하는 경제기사 따라잡기] 일본 경제가 유독 어려운 이유는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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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경제연구원과 함께하는 경제기사 따라잡기] 일본 경제가 유독 어려운 이유는 뭔가요?

입력
2010.03.15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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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서서히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는 선진국 가운데 유독 일본 만은 앞으로도 계속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습니다. 또다시 '잃어버린 10년'을 맞을 것이라는 비관론까지 나오는데요. 오늘은 왜 일본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A.일본 경제가 얼마나 심각한가요?

올 1월 일본 도쿄의 중심부, 긴자(銀座)에 있는 세이부 백화점 유라쿠초 점이 12년 연속 매출감소를 이겨내지 못하고 폐점됐습니다. 한때 일본 번영의 상징으로 불리던 곳이 몰락한 겁니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의 첨병이었던 일본의 대표 항공사 일본항공(JAL)도 최근 경영 부실을 견디지 못하고 법정관리에 들어갔습니다. 여기에 일본 제조업의 간판인 도요타까지 대규모 '리콜' 파동을 겪으면서 일본 열도를 큰 충격으로 몰아 넣고 있습니다.

일본은 올해 세계 경제 2위라는 지위를 중국에게 내줄 것으로 예상 됩니다. 1990년대 버블 경제 붕괴 이후 겪었던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 '잃어버린 30년'이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열도 전체에 번지고 있습니다.

사실 위기는 일찍부터 감지됐습니다. 1990년 신(新) 조선 건조량 부문에서 세계 점유율 43%로 부동의 1위이던 일본 조선업은 2000년 점유율 38.6%로 치고 올라온 한국에 밀려 2위로 물러났습니다. 2007년에는 당시 세계 전기ㆍ전자기업 상위 12개사의 절반(6개)이 일본 기업이었지만 이들 6개 기업의 순이익 합계(70억달러)는 세계 랭킹 2위인 삼성(80억달러) 한 곳에도 못 미쳤습니다.

일본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5.0%로 미국(-2.5%)과 EU(-3.9%)보다 훨씬 낮았습니다. 게다가 일본 경제는 지난해 10월 기준 -2.5%의 소비자물가 하락세를 보이며 완연한 디플레이션(풀어 읽는 키워드 참조) 상황에 있습니다. 막대한 재정지출로 잠시 회복 조짐을 보이듯 하던 일본 경제가 더블 딥(경기 회복 후 재침체) 상황으로 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일본 경제가 왜 이렇게 된 거죠?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대내ㆍ외적인 경제ㆍ사회 여건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첫째, 일본은 대외적 여건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엔고(高)에 따른 가격 경쟁력 약화와 한국을 비롯한 후발 추격국가의 기술 경쟁력 강화로 인해 오래 전부터 산업 구조조정이 요구됐지만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특히 엔고에 따른 가격 경쟁력 약화를 해외 생산 방식으로 대응하면서 품질 경영에 큰 허점이 생겼습니다. 2003~2007년 일본의 대외 직접투자 가운데 절반 이상(54.1%)이 제조업이었는데, 이는 같은 기간 미국(25.6%), 영국(29.4%), 독일(17.8%) 보다 훨씬 높은 수준입니다.

게다가 한국을 중심으로 한 기술 추격 국가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최첨단 기술 보유국 사이에서 일본은 '샌드위치' 상황에 빠졌습니다. 미국 국가과학재단의 '2008년 과학기술 지표'에 따르면 일본의 최첨단 기술 제품 세계 점유율은 1985년 25.3%에서 2005년 16.2%로 뚝 떨어진 반면, 중국은 1985년 1.5%에서 2005년 16.1%로 14.6%포인트나 급상승하며 일본을 거의 따라 잡았습니다. 미국은 일본과는 대조적으로 1985년 33.2%에서 2005년 34.5%로 오히려 1.3%포인트 점유율을 높였습니다.

둘째, 산업구조 고도화와 기업 경영혁신의 정체를 들 수 있습니다. 일본의 산업 구조는 하드웨어 제조 기술을 주축으로 한 제조업 중심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의 미래형 산업구조로의 전환이 지체됐습니다. 일본의 3차 산업 비중은 1955년 61.8%에서 2005년 71.7%로 9.9%포인트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1차 산업의 감소분 15.2%포인트를 전부 흡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서비스업 등 신성장 산업 대신 2차 산업 비중이 2005년에도 26.8%에 달합니다. 특히 대표적 3차 산업으로 꼽히는 금융업 비중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7%(2007년 기준)에 불과해 미국(33%)과 독일(27%)보다 낮습니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 살펴보면, 지나친 현장 중심의 경영이 한계를 보였습니다. 급변하는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에서 높은 기술력에 부가가치를 접목시키는 기획력과 경영 전략의 부재로 세계를 선도하는 기업이 자라지 못했습니다. 경영자의 리더십과 비전보다 현장을 중시하는 경영은 기술력의 제고를 뜻하는 '카이젠'(改善)에는 도움이 되지만, 세계를 선도하는 경영에는 한계를 보이면서 세계 경영환경 변화에 대처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습니다.

셋째,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졌다는 일본 수출 기업들의 수출다각화 실패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수출은 자동차, 일반기계, 전기기계 등 3대 수출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지역 편중도 심합니다. 일본 자동차의 최대 수출 지역은 미국으로 전체의 30.1%를 차지합니다. 일반기계 수출은 미국(18.8%)과 중국(18.7%) 두 나라만 합쳐도 전체의 37.5%, 전기기계는 중국(31.7%), 미국(14.5%)을 합쳐 46.2%에 달하고 있습니다. 특정 국가에 수출이 편중되면 그 나라가 어려워질 경우 덩달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본 사회의 저출산ㆍ고령화 현상과 비정규직 증가 등 경제활력 저하 현상을 들 수 있습니다. 이는 특히 일본 제조업 기술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중소 제조업의 기술 이전을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일본 제조업계에서 인적 본 형성이라는 미래 지향적 투자가 감소했다는 의미입니다. 1985년 16.4%에 불과하던 일본의 비정규직 비율은 1990년 20%대를 넘어섰고 작년 3분기에는 평균 34.1%까지 치솟아 현재 취업자 3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인 상태입니다.

우리는 일본 사례에서 뭘 배워야 할까요?

한국 경제의 성장 패턴을 볼 때 현재 일본 경제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우리도 충분히 겪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일부 대기업이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고 점유율 1위를 하더라도 중국 등의 후발 추격국가에게 추월 당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개별 기업의 성장은 물론 우리나라 경제의 잠재성장력을 복원하기 위해서도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하드웨어 중심의 경제 구조를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하려면 일본의 실패를 교훈 삼아 기존 제조업을 고수하기보다 글로벌 시각에서 산업 구조를 혁신해 나가야 합니다. 또 우리나라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신흥시장국을 거대한 시장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으며, 이들 국가와의 교역을 더욱 확대하고 이들 국가의 성장 잠재력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별 기업들은 선진기술을 뒤쫓던 '기술 추격' 시대의 조직 문화에서 벗어나 보다 창의적이고 감성을 중시하는 조직 문화를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외형적인 성장에 걸맞은 조직 내부의 소프트 경쟁력도 배양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고객 중심의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데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 풀어읽는 키워드

디플레이션(deflation)

일반적으로 공급과잉에 의해 물가가 하락하는 상태를 말하지만 일본의 디플레이션 현상은 기업이 물건을 만들어 공급해도 팔리지 않아 물가가 하락하는 수요 부족 때문입니다. 특히 수요 부족에 따른 디플레이션은 물가 하락을 심화시켜 생산 위축과 임금 하락을 초래함으로써 디플레이션을 더욱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발생합니다.

정유훈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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