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이었던 아버지의 잦은 전근 탓에 어린 시절을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보냈다. 그때 제일 신났던 날은 '잔치'였다. 둘째, 셋째 고모의 혼례가 우리 마당에서 있었다. 집안의 잔치가 마을의 축제였다. 아버지는 군용 차량 엔진에 전선을 연결해 알전구를 밝혔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시절이라 그것이 신기해 구경하러 아이가 많았다. 청방에는 잔치 음식이 넘쳐났다. 친척과 이웃의 부조는 돈이 아니라 잔치에 쓰이는 음식이었다. 직접 만들고 빚은 떡, 막걸리, 소주, 식혜, 청포묵이 속속 들어왔다. 어떤 크기의 돼지를 몇 마리 잡는 것에 따라 잔치가 좋았다는 평가의 기준이 됐다.
잔치에 온 손님에게 음식을 가져다 드리는 것을 '접시 돌린다'고 했다. 나는 접시를 돌리며 손님 상에 나갈 돼지고기 수육을 슬쩍슬쩍 집어내 양 볼이 미어 터지도록 먹었다. 잔치의 꽃은 혼례 사진이었다. 사모관대 차림의 신랑과 족두리 쓰고 연지 바른 신부가 중심이 되고 그 주위로 일가 친척들이 함께 서서 사진을 찍었다.
읍에서 출장 온 사진사의 '펑 합니다!' 라는 소리에 화약이 터지며 빛이 번쩍 하던 구식 사진기였다. 흑백사진 속에 깜짝 놀란 표정의 유년의 내가 서 있는데 잔치가 축제였던 시절이 끝나 버린 지 오래다. 봄과 함께 청첩장이 날아든다. 똑같이 변해버린 결혼식. 청첩장이 세금 고지서 같고 뷔페 식권 같다.
정일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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