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를 거들떠보기나 하나요. 한낱 구직자나 알바생일 뿐인데. 그러니 한데 뭉쳐서 뭔가 보여주려구요."
주말인 13일 오후 서울 남산아래 한 교회건물 회의실. 국내 첫 세대별 노조인 '청년유니온' 창립총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른바 '88만원 세대'의 권익을 대변하기 위한 단체로, 지난해 8월 이후 주로 온라인 커뮤니티 중심으로 활동해오다 18일 노조설립신고서 제출을 앞두고 규약제정과 임원선출을 마무리하는 자리였다.
팍팍한 삶에 대한 넋두리가 쏟아질 것이라는 편견도 잠시, 전체 60명 중 이날 참석한 35명의 조합원들은 규약에 담을 문구를 놓고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조합비 하한선 3,000원이 부담돼 가입 못하는 친구들도 있다"는 현실적인 주문에서부터 "우리의 권리를 찾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길이다"는 거창한 담론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았던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헌혈 같은 공익활동을 잊지 말자"는 제안도 나왔다.
이날 확정한 사업계획은 모두 '일할 권리'에 맞춰졌다. 최저임금 보장을 위해 배달 서빙 편의점 등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청년층의 실태조사를 벌이고 사회단체 등과 연대해 실업부조, 청년고용할당제 도입을 강력히 요구하기로 했다.
청년유니온의 모델인 일본 수도권청년유니온과 5월1일 노동절에 공동으로 행사를 진행하는 방안도 추진할 예정이다. 올해 조합원 200명, 월 활동비 150만원을 목표로 잡은 것에 비하면 야무진 계획이다.
다만 모든 게 처음이다 보니 총회 도중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규약을 반드시 직접ㆍ비밀투표로 확정해야 되는지를 놓고 의견이 엇갈려 노동법 조항을 뒤적이는가 하면, 토론이 길어지면서 여러 조합원들이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황급히 불러 표결 정족수를 채우기도 했다.
청년유니온은 기업노조가 아닌 지역노조를 표방한다. 따라서 사업장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대신 주유소 분회, 패스트푸드점 분회 등을 만들어 가령, 알바생이 월급을 떼이면 찾아가서 사업주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기업노조보다 발전된 형태라고는 하나 응집력이 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김영경 위원장(30ㆍ여)은 "현재 청년들의 비참한 현실에 비춰보면 노조를 만드는데 산통도 적었고 늦둥이로 보이겠지만 엄청난 우량아가 태어난 것 같다"며 "조합원 60명에 불과한 작은 시작을 청년의 힘으로 크게 키워 대한민국을 바꿔가겠다"고 말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