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님! 저희 과는 자연과학대학 중에 유일하게 실험실이 없습니다. 등록금은 다른 과와 같은데 왜 저희 과만 실험실도 없고 기자재도 안 씁니까? 차라리 등록금 좀 내려주시면 안될까요?"
자연과학대 재학생 150명의 시선이 집중되자, 박우희 세종대 총장은 벌컥벌컥 생수를 들이켰다. 이마에선 식은땀이 흘렀다. 12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군자동의 세종대 군자관 6층 집현전 홀. 8일부터 22일까지 열리는 세종대 재학생을 위한'총장과의 대화'중 자연과학대 학생들과의 만남에서다. 총장이 직접 재학생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학교 발전방안을 의논하겠다며 마련한 자리지만 막상 신세대 학생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답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터.
박 총장은 "아주 좋은 질문이에요"라면서도 "우리 처장님이 답해주시면 어떨까요?"하며 마이크를 기획처장에게 넘겼다. 배덕효 세종대 기획처장(토목공학과 교수)은 "공간문제나 등록금이 각 학과의 특성을 반영해서 책정이 돼야겠지만 그렇지 못한 점도 있었다"며 "충분히 참작을 해서 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조정하겠다"고 답했다. 좌중에서 박수가 나왔다.
세종대 '총장과의 대화'는 올해 처음 기획됐다. 인문대 재학생을 대상으로 시작된 행사는 사회과학대, 경영대, 호텔관광대, 자연과학대 순으로 진행됐다. 화두는 지난 2월말 세종대가 발표한 대학발전방안. 이날 참석한 재학생들의 손에는 40여 쪽에 달하는 발전방안 계획안이 쥐어졌다. 설명을 시작한 박 총장은 취임 이후 7개월간 준비했다는 대학발전방안 및 정책을 학생들 앞에서 2시간 동안 낱낱이 검사 받았다.
박 총장은 모두 강연에서 "홍콩과학기술대학교(HKUST)를 본보기로 삼아 발전방안을 고민해보자"며 홍콩과학기술대의 부상 비결을 설명했다. 박 총장은 탄탄한 지원으로 높은 수준의 세계적인 교수를 채용한 점과 매년 대학평가를 통해 전격 지원할 과를 선택해 온 점을 홍콩과학기술대 발전의 요체라고 분석했다. 이어 박 총장이 "우리도 훌륭한 교수들을 데려오자"며 "여러분도 추천할 수 있다"고 제안하자 좌중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총장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학생들의 송곳 같은 질문이 쏟아졌다. 물리학과 4학년 박한상씨는 "물리학 실험 수업에 총 12명 들어가는데 앉으면 사람이 움직일 수도 없을 만큼 강의실이 좁다"며 낙후된 시설을 지적했다. 당장 건물을 지을 수는 없다면 필요 없는 것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시설을 개선하는 방법을 강구해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박 총장은 학생과의 대화가 끝난 후 "학생들의 솔직한 비판과 의견을 듣고 보니 만남을 갖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진지하게 대화에 임하는 학생들의 모습에 뿌듯함과 큰 기대를 느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이종영(지구환경학과ㆍ4학년)씨는 "총장님이 터놓고 학생들과 대화를 시도한다는 점이 신선하고 좋았다"면서 총장과의 첫 만남에 후한 점수를 매겼다.
박 총장에 대한 학생들의 숙제검사는 생명과학대, 전자정보공대, 공과대, 예체능대를 대상으로 계속된다. 학교측은 이 행사에서 나온 학생들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해 4월 다시 학교발전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김혜영 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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