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잡으면 권력 반대편에 서 있는 이들을 제거하는 것은 권력의 운명적 속성이다. 과거 새 정권이 탄생할 때마다 감사원 검찰 국세청 등 권력 기관이 투입돼 전 정권 인사들의 비리를 캐내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것만 봐도 그렇다. 현 정권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 정권 출범 후 전 정권의 흔적을 지우려는 조치들이 이어졌다.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전 정권 인사들의 비리 캐기가 이어졌다. 권력 기관들이 투입됐고, 정부 부처들까지 나서 전 정권이 임명한 기관장들을 사퇴시키기 위한 압력성 감사를 진행했다.
전 정권 인사를 솎아내는 방식의 적절성 논란은 제쳐두더라도 정치적 목적을 위해 권력 기관 등을 동원하는 것은 보복의 악순환을 부르기 마련이다. 이를 끊으려면 정권의 혜택을 본 인사는 정권 퇴진과 함께 물러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럴 의사가 없는 인사를 물러나게 할 때도 정무직이나 '낙하산 인사'로 범위를 최소화하고 규정과 절차를 따라야 한다.
김상곤 교육감 압박하는 정권
집권 세력이 우리 편끼리 일하려는 것을 비난할 순 없다. 같은 이념과 철학을 공유하지 않고선 원활한 국정 운영과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새 정권의 생각과 의지가 공직 사회에 스며들지 않을 때, 우리 사회와 국민에게 미칠 부작용과 손실은 막대할 것이다. 그런 현실적 계산이 현 정권에게 전 정권과의 단절을 서두르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현실적 고민을 십분 이해한다 해도 최근 김상곤 경기교육감에 대한 현 정권의 파상적 압박은 납득하기 어렵다. 김 교육감은 지난해 5월 취임한 뒤 무려 60일 동안 교육여건 개선 실태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받았다. 이어 11일 동안 경기도의회의 행정 감사가, 지난달 22일부터 어제까지 19일 동안 교육과학기술부의 종합감사가 진행됐다. 특히 교과부는 종합감사에 전체 감사 인력의 3분의 2 규모인 22명을 투입했다. 또 25일부터 4월까지는 경기도의회 한나라당 의원들이 무상급식 추진 현황을 조사한다. 현 정권이 진보적 성향의 김 교육감을 축출하려고 먼지털이 식 뒤 캐기를 한다고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김 교육감은 전 정권 인사도, 전 정권에서 혜택을 입은 정무직, 임명직 공무원도 아니다. 김 교육감은 공약을 내걸고 선거에서 경기도민의 선택을 받은 선출직 공무원이다. 개인비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무상급식과 혁신학교, 학생인권조례 등 정권의 이념이나 철학과 궤를 달리하는 정책을 추진한다 해서 선출직 공무원을 손본다면 이는 지역주민의 선택을 공공연히 부정하는 것이다.
또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뤄지는 전례 없는 대규모 종합감사는 김 교육감을 흠집 내어 연임을 저지하는 데 활용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인천시교육감 선거에 출마하려는 부교육감에게 출마 포기 압력을 가할 정도니 김 교육감에 대한 감사가 지방선거와 상관없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지방선거 전에 종합감사 결과와 김 교육감에 대한 조치가 내려진다면 정부의 선거 개입 논란은 증폭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진보인사 노린 권력 남용 없어야
김 교육감의 시국선언 가담 전교조 교사 징계 거부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교과부 고발에 따라 김 교육감을 조사한 뒤 직무유기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교사의 시국선언 참여는 법원에서조차 유ㆍ무죄가 갈릴 정도로 이견이 첨예하다. 그만큼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주목되는 사안이다. 뒤집어 말하면 교과부의 징계 요구가 부당한 조치로, 대법원 판결 때까지 징계를 유보한 김 교육감 조치가 합당한 것으로 결론날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교과부는 법률적 논쟁의 한 축만 끌어들여 징계를 명령한 뒤 김 교육감이 거부하자 발 빠르게 형사고발 절차를 밟았다. 이는 이성과 합리를 결여한 과잉 대응에 다름 아니다.
교육 철학이 다르다고 선거에 출마할 도교육감을 노골적으로 압박하는 것은 치졸하다. 합법적인 권력이라도 정치적 목적에 따라 남용하면 정당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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